▲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소외되고 잊혀져 가는 나이에 절제의 지혜를 깨달아가고 자유를 느끼며 자신을 위로받는 추억을 회상해본다. 희망이 옅어지고 멀어지면 추억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걸까! 책갈피 사이 끼워두었던 단풍나무, 은행나무 잎을 들추어보듯 머릿속 잊히지 않고 간직한 추억의 앨범을 넘기어본다. 많이 보지도 여러 가지 갖지도 못해 소중함으로 각인된 정이 가는 아름다운 순간들이여.


어릴 적 해 질 무렵 농가 마당에는 장독대와 꽃밭과 남새밭이 오순도순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평화를 이야기하고, 토방 위 멍멍이도 평화롭게 졸고 있었다. 모름이 축복일까. 부귀영화쯤이야 돌담 넘어 다른 세상 야기로 치고 깃털처럼 가벼워져 푸른 가을 하늘 멀리 날아만 가고 싶던 시절. 세상 만물이 존재 의미가 있고 다름이 있어 아름답듯 소소한 즐거움일지라도 부나 명예나 권력과 구분 지어 별개의 존재로 행복하게 인식하고 좋아했던 시절이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라디오를 들여놓은 이장 집에서 모깃불 피워놓고 옥수수를 쪄먹으며 마을 사람들이 담소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던 시절. 세월이 흘러 흑백 TV가 들어왔으나 시도 때도 없이 화면이 찌그러지고 흔들려 비바람 맞으며 안테나의 방향을 맞추면서, 동남향 산 위에 쌍무지개를 보며 선명함의 갈증을 위로받던 시절도 있었다. 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길에 알밤 몇 톨 주어도 마냥 즐겁고, 논에서 일하다 참게 한 마리 잡아도 더없이 흐뭇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랑의 흙을 밀어내고 커가는 고구마, 밭두렁 풀 섶을 밀어내고 불쑥 고개를 내미는 호박, 가뭄을 이겨내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단맛과 감칠맛을 품어낸 명 밭 무, 곱고 사랑스럽게 매달려 익어가는 고추와 가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었을까?


가난했지만 차이란 없었기에 모두가 이심전심이었고, 고된 농사일로 시장기를 끼고 살아 열무에 풋고추와 된장 쌈으로도 웃으며 행복을 주고받았다.


약을 단맛으로 외피를 잎혀 당의정을 만들듯 일에 건강과 즐거움을 코팅하는 국민적 지혜를 모아볼 수는 없을까. 미숙함을 맑은 미소로 이해받고, 부족함을 더불어 사는 고마움으로 감사하며 양해를 구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듯 개인한사람 한 사람도 서로 존중하고 인정받으며, 개인 자신도 소중함에 걸맞은 몸과 마음을 초가삼간 지붕 위 둥근 박처럼 영글어 가면 좋겠다. 혼자 좋은 것을 감추며 침묵하는 사람을 과묵하다 칭찬하지 말고, 좋은 것 보면 이웃이 생각나 동네방네 소문내는 사람 경박하다 비난하지 않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20대 초반과,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이라고 하니 나이 듦을 서운해 말고 양보와 적당한 이해로 좋게 봐주고 아름답게 이해하는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일본 속담에 “장수하려면 어깨에 힘을 빼라”라는 말이 있다 한다. 투수가 몸에 힘이 들어가면 제구가 잘 안 된다는데 어개에 힘이 들어가면 덩실덩실 어깨춤 추며 손잡고 같이 가기 어렵지 않겠는가.


코로나 사태는 인간들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된 삶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출산율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모유가 코로나 면역력에 도움을 주고, 모유는 태아나 신생아에게 코로나균을 직접 전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었을 의미할까. 우리 어머니 장독대에 정화수 떠 놓고 삼시랑 할머니에게 비는 뜻은 태어나며 외치는 힘찬 울음소리와 맑은 눈 맞춤, 고사리 같은 예쁜 손만 봐도 낳고 기르는 것에 감지덕지한다며 생긴 대로 낳아 잘 키우겠다고 빌지 않았을까.


코로나 19는 70% 가까이 전파되면 집단면역력이 생긴다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30%는 생명을 보존 시켜 준다는 뜻이다. 콩을 재배하기 위해 아마존 숲이 급격히 줄고 있고, 연이은 산불로 캘리포니아의 숲이 사라지고 있으며, 라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팜유를 얻기 위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숲들이 파괴되며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인간은 지구상 생명체를 일부라도 남기지 않고 멸종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노년의 외로움 때문에 불러낸 추억들이 코로나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된 탓일까. 검약과 배려로 축복을 주고받는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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