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언어 - 김정환

조각의 언어

김정환

흐르는 음악에서
건축인 음향을 뺀다면(그러니까 당신, 너무
덜컹대면 곤란하지. 무너진다.) 네 눈동자에 어린
내 얼굴 보고 내 눈동자에 어렸을 네 얼굴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탄생한다.(그러니까 당신, 너무 토라지면
곤란하지. 등 돌리면 평면은
아무리 깊어도 표정이 될 수 없다.)
나는 내 차원에서 너는 네 차원에서
움직일밖에 없지만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내 차원이고 네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네 차원이기에 그것은
끊임없이 세계의 주인공
모성 속으로 운동하는
중력의 댓가로 입체를 입는다.
피그말리온의 온기는 이미
발과 발.
말은 생각의 목소리고 언어는 생각이 말로 되는
순간의 생각이고
언어는 조각이다.
말씀의 생애가 펼쳐지기도 전에 말씀의
육체가 에로틱하다.
금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말이기도 전에(은은 말이 될 수
없어서 대낮보다 더 깊은 세월의 빛을 내지)
생각의 무늬를 만들고 조각을 모아
집을 지을 수도 있다. 건축이 아예 침묵을
거룩하게 만들기 전에
우리는 어느새 시간을 조각한
광경이고 언어다.
그렇게 목구멍, 소리를 내고
음성, 그대를 알고
우리는 말이 된다.
그렇게 생명은 가상현실을 벗고
서로의 손은 서로의 그릇 너머 벌써
거푸집이다.

※ 시인 김정환

- 1954년 서울 출생

  1. 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 등단
  • 32회 만해문학상 외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외

 

시인 김정환은 1980년대를 통틀어 민중의 편에선 시인을 꼽아야 한다면 그 첫머리에 이름을 새겨져야 할 인물이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분단과 군부독재, 그리고 재벌이라는 괴물들의 탄생으로부터 비롯된 한국현대사의 모순적인 사회현상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들로 대변되는 민중운동의 성장과 그 지향점을 분명히 내뱉어 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시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그는 시뿐 아니라 여러 문학적 도구를 사용하는데 막힘이 없었는데 <사랑의 생애> 등 여러 편의 장편소설을 상자라기도 했다. 그것이 시대의 갖가지 억압과 착취를 까발리고 그것에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역사적 패배감 속에 저항을 담고자 했던 여느 민중시인이나 참여시인과는 달리 김정환이 다루는 언어는 생기가 넘치고 한 걸음 더 나가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어두운 시대가 배경에 깔린 만큼 암울할지언정 서민적 밀도에서 길러진 꽃들이 수없이 피어난다.

그리고 시 <조각의 언어>는 한 시대를, 격동의 시기를 잘 흘러보낸 중년의 시인이 비로소 언어가 빚어내는 세상에 눈길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테면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섬을 뜻하는데 절망과 희망의 사잇길 어디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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