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 김사인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 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시인 김사인
-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 1977년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미수사건 구속
- 1982년 시와 경제 동인
- 1989년 <노동해방문학> 창간 발행인
- 1987년 10월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 외 다수
- 1987년 제6회 신동엽문학상
- 2005년 제50회 현대문학상
- 2006년 제14회 대산문학상

비바람을 피해 몸을 누일 수 있는 곳, 그곳을 우리는 집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허락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속한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입고 먹고 잠들 수 있는 곳은 최소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삶의 권리이기도 할 것이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인간과 인간을 계급적으로 나누는 가장 명확한 경계선이 되고 있기도 합 니다. 부와 빈곤의 극명한 대비가 바로 의식주에서 표출된다는 뜻 이겠지요.

인간의 몸이라는 건 애초에 차이도, 차별도 둘 수 없는 것인데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리고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당하는 권력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가장 먼저 등장한 게 바로 소유와 대물림이라는 인간모순과 차별이 발생했습니다.

그리하여 힘이든 재화든 권력의 변형은 다소간 변화를 겪었을 터 이나 누군가는 명품을 입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가장 편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자들이 생겨났지요. 반면 누군가는 헐벗고 굶주리고 지친 몸 하나 편하게 누워 잠들 수 있는 곳을 허락 받지 못한 자들도 생겨났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벽으로 자리 잡게 된 셈인데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가 주는 차별은 참 슬프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김사인의 시선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여진 그 차별적 경계, 그리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기저에 깔고 철저히 개인 적인 내면으로 침잔되는 시선을 갖고 있습니다. 경계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슬픔을 함께 주억거리는 눈빛으로 말입니다.

노숙露宿은 말 그대로 일정한 숙소가 없어 이슬을 맞으며 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선 1997년 IMF 이후 노숙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휘황한 도심의 흥청거림 속에 짓눌린 채 우울을 잔뜩 머금은 지 하의 삶을 시작한 사람들 말이지요.

김사인의 시 <노숙>은 이러한 노숙자의 자아가 자신의 삶을 되돌 아보는 시선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언뜻 분노가 얽히기도 하지만 이내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연민이 찾아옵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며 살던 시공간으로부터 배척당한 세력이 있을 터이나 정작 그들이 누군지는 분명하지 않고 정작 가족 과 친구 등등 모든 인간관계를 내려놓고 사는 자신의 무너진 삶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그래서 가볍지 않게 읽힙니다.

무엇보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어떤가 몸이여”라는 마지막 구절에 담긴 시적 자아의 태도 앞에 우리는 가만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두고 평론가 임우기는 “정수리로 내려치는 우레 같은 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저 역시 이 구절을 앞에 두고선 이와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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