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도장도 파면서 지나온 27년의 세월
한 장, 한 글자씩 담았던 여수복 사장의 ‘사부곡’

1995년 1월 어느 날, 간밤에 여수복 사장의 남편이 떠났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유난스럽던지, 남편은 밤 12시가 넘은 때 불쑥 머리를 감고 면도를 했다. 다음날 비디오 촬영도 있고 회갑 촬영도 있단다. 그때 남편이 사진을 참 잘 찍어서 주변에서 찾는 사람도 많았다. 

여수복 사장이 오래된 필름 사진기를 손질하고 있다.

 

여 사장은 뒤늦게 잠에 들었는데 남편이 이번엔 코를 골았다. 잠귀가 밝았던 여 사장은 남편을 몇 번이나 건드리며 말했다.
“코 좀 그만 골아요. 잠이 잘 안 와요.”  잠시 후 남편이 또 다시 몇 차례 코를 심하게 골더니 이내 잠잠했다.

새벽 2시나 됐을까,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 숨을 쉬지 않는다.
여 사장은 방 불을 켜고, 울고불고 이웃을 불러 병원으로 데려갔다. 심장마비였다. 어떻게 ‘아프다’ 말 한 마디를 안 하고 떠나 버렸는지 너무 섭섭했다. 

이후로도 한참을 울었다. 몇 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물을 틀어놓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적어도 손님들 앞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농사지을 밭 하나 없고, 살 길은 막막 했다. 딸 하나에 아들 둘은 한없이 어렸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카메라를 잡은 세월이 벌써 27년이다. 순천으로 사진을 배우러 다 니면서도 카메라는 비싼 것을 장만했다. 남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고 혼자 몸이라도 자식들을 당당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 이 큰 탓이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낡은 장비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낡은 장비들.

 

여 사장은 먹고 살기 위해서 뭐든 다 했다. 도장 파는 법을 배워서 스타사진관에 딸린 방에서 도장도 팠다. 바로 옆에서 분식집도 해 봤다. 

지금은 아이들도 다 키우고 낮에는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가끔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전화가 오면 일정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가끔 찾아오는 어르신들은 마땅한 차편이 없으니 자신이 직접 댁으로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세대가 바뀌었지만 사진 한 장, 도장 한 글자 정성을 다하는 건 똑같다. 

 여수복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어느 유 치원의 소풍날 단체사진. 아이들 모두 활짝 웃고 있다.
여수복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어느 유 치원의 소풍날 단체사진. 아이들 모두 활짝 웃고 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학생들 졸업사진 찍으라고 소개도 해주고, 도장도 배워보라고 알려주고, 회갑잔치 등 행사도 꼭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어요. 사진을 찍고 도장을 파면서도 늘 남편 생각이 났어요.”

여 사장은 하동에서 태어났다. 꽃다운 나이 스물넷에 남편을 만나 시집오면서 이곳으로 왔다. 남편은 말수가 적었지만 참 착했단다. 가진 것 없이 어려웠지만 참 많이 의지가 됐던 날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여 사장은 아직 남편이 갖고 있던 물건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주 낡은 필름카메라들과 비디오카메라, 필름을 수정하던 기계, 그때 쓰였던 소품들이 여전히 한 가득이다. 

“하나도 안 버렸어요. 누가 어떻게 알 았는지 팔라고 찾아와도 안 팔았어요. 나중에 박물관이라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기도 했거든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낡은 장비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낡은 장비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낡은 장비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낡은 장비들.

 

스타사진관과 이곳을 지키고 있는 여수복 사장. 어느덧 찾아가지 않아 쌓인 필름과 도장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담는 일도,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는 일도 이제는 사실 거의 없다. 가끔 잊지 않고 자신에게 사진을 맡길 때를 제외하면 문도 잘 열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타사진관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가 빠진 채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어색하지만 한껏 꾸민 청소년들, 오붓하게 그날을 기념했던 가족들, 자신들의 영정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한 어르신들.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스타사진관에 남아 있다.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돼요. 나는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어요. 남은 자식들 결혼하는 모습만 보면 더 이상 소원도 없겠네요.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웃들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왔던 스타 사진관.
이웃들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왔던 스타 사진관.


사람 좋아하고, 명랑하면서도 단단한, 그러면서도 한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있는 여수복 사장과 스타사진관은 진상면 섬거리에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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