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논쇠 광양제철남초 교장, 대통령 표창 수여
초등 한자교재 개발 등 교육일선 현장서 공헌

김논쇠 광양제철남초 교장
김논쇠 광양제철남초 교장

김논쇠 교장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막연히 선생님이란 꿈을 키워왔던 그는 전주여고와 전주교대를 졸업하며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전문적인 상담을 위해 교직 생활 중 순천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 석사도 취득했다. 그리고 지금은 42년의 교직 생활 후 정년을 1년여 앞두고 있다.

1981년 3월, 처음 발령받은 곳은 전북 무주의 삼방초등학교로 한 학년당 1개 반으로만 이뤄진 작은 학교였다. 첫 출근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내야 했다.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상황이, 자신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던 탓이다.

하지만 아이들만 바라보겠다는 신념과 열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교사 시절 김 교장은 항상 웃는 얼굴 이었다. 힘들고 피곤해도 얼굴을 찌푸린 때가 없었다. 두 번째 발령지였던 포항 신흥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령 때도, 담임 때도, 교감, 교장 때도 김 교장의 표정은 늘 밝았고 포근했다.

김 교장은 “교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마음인데 교사는 명랑해야 한다”며 “아이들은 하루종일 교사의 얼굴만 보는데 밝은 표정을 보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42년의 교직생활 중 1986년부터 37년을 광양에서 보냈다. 그녀가 20대 후반이던 그때의 광양은 제철소가 들어온 이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아이들로 분반이 꾸준했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김 교장이 추진했던 프로젝트 는 ‘주제일기 발표’다.

김 교장은 아이들이 조금 더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그날의 주제를 갖고 일기를 쓰도록 권하고, 또 꼭 발표하도록 도왔다. 처음에는 어색 하지만 발표를 거듭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뿌듯했다.

김 교장은 “조금 더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은 애정을 한껏 더 쏟았다”며 “항상 좋은 말, 희망적인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소회했다.

김 교장은 제철남초에서 8년 반의 교감 생활을 거쳐 정년까지 임기를 2년 반 남겨두고 교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는 코로나19가 시작됐던 시기기도 하다. 정부와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학사일 정이 바뀌던 날이 이어졌다. 모든 학교가 힘들어했던 시기지만 광양제철남초는 어려움이 크지 않았다. 준비가 이미 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교감 때부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교사들의 교육과정 편의 기반을 갖춰주는 것이었다. 교사가 수업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아이들이 행복한 환경에서 알찬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 조금만 불편하다고 하면 바로 개선 하도록 노력했고, 교구 구입이나 콘텐츠 개발이 필요할 때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때문에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할 당시 이미 초 3학년부터 6학년 까지 1인 1테블릿이 준비돼 있었다. 디지털교과서도 활성화 돼 있어 비대면 전환 수업이 조금 더 수월했다.

학부모 대상 공개수업도 3개의 줌 채널을 활용해 학부모들이 편하게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스스로 교육 교재를 개발 하거나 교육 과정을 연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한자교과서 ‘한자도 배우고, 급수도 따고’ 교재를 개발해 8급에서 4급까지 전학년 5종을 배포해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교재를 기반으로 파워포인트 수업 교재도 만들어 수업 중 따라 하기 쉽게 했다. 또 아이들에게 꿈을 키우고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6년 6악기’ 프로젝트도 운영했다. 학년 단계별로 △리듬악기 △실로폰 △리코더 △오카리나 △우쿨렐레 △하모니카 등 을 배우게 하고 연말이면 학부모 초청 발표회를 통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도록 했다.

이처럼 남다른 학사 운영 능력과 교육 혁신 기여 등을 인정받은 김논쇠 교장은 최근 제41회 스승의 날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기쁨 을 얻었다.

사실 이번 대통령 표창은 정년퇴직 1년여를 앞둔 김 교장을 위한 동료, 후배교사들의 마음이 담긴 결과다. 동료, 후배교사들이 표창 준비를 거절하는 김 교장을 설득하 고 대신 공적자료를 준비하는 등 열성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생각지도 않았던 큰 선물을 받아 괜히 부끄럽다.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동료, 후배교사들이 서로 믿고 의지했기 때문에 스스로 열심히 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 올 수 있었다”며 “학교는 내 삶 그 자체였다. 퇴직하면 그동안 소홀했던 나를 챙겨보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 라며 “남은 1년도 교사들이 열심히 하는 분위기와 활발한 학생회 문화가 전통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더 공고히 다져 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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