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동시집 민들레 편지 펴 낸 이상인 시인

귀뚜라미 소리가 빠르게 가을로 진입하는 세월을 물씬 토해놓는 계절이다. 길가에 꽃들이 가을의 사립문을 여는 풍경을 따라서 그를 만나러 간다. 

억불봉 산자락 아래 고즈넉하게 들어앉아 맑은 아이들을 키워내는 학교, 정년을 얼마 두지 않은 그가 가장 많은 삶의 태를 묻은 곳이다. 이를 두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고 한다면 미안하게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법을 이제 눈치나마 챘으니까.
 

이상인 시인
이상인 시인

햇볕도 잠시 구름에 얼굴을 묻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진상초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장실 문을 열고 대뜸 “기어이 동시집을 냈다”고 묻자 시인 역시 대뜸 “시 쓰기 좋은 계절 아니냐”면서 “이제 시도 다시 쓰고 시집도 내고 해야 할 텐데”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더니 작은 책 한 권을 들어 건넸다. 짙노란 책표지가 유난히 눈에 띄는 동시집 <민들레 편지/푸른사상>다.

우리지역을 무대로 활동 중인 중견 시인이자 늦깎이 아동 시인이기도 한 이상인 시인이 첫 동시집 <민들레 편지>를 내놓았다.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그의 시는 날로 서정성을 더하더니 결국 평생 교단에 머물면서 만나온 아이들의 마음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과 사물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간결한 문채로 담아냈다. 

직업이라고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것밖에 없는 시인은 동시집 <민들레 편지>를 통해 아이들의 꿈과 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구나 시집에 들어앉은 그림들은 모두 그가 거쳐 온 학교의 여전히 푸른 잎사귀 같은 아이들이 직접 그린 것이어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동화 같기도 한 50편의 동시들은 우리들을 민들레꽃 같은 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인데 올 여름 이 시인은 아이들과 함께 그동안 동시들을 묶어 시화전을 먼저 열었다. 

당시 이 시인은 “그동안 쓴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시화로 만들어 운동장 가에 있는 등나무 아래 단단히 묶어 놓으니 지나가던 새도 나비도 열심히 읽고 가고 해님도 달님도 찾아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동시를 읽고 늘 동시를 쓰면서 동시처럼 맑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 꾼다”고 했었다. 

이미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자한, 상당한 내력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받지만 여전히 그는 교단에서 해맑은 아이들과 재잘대기를 좋아하는 선생의 마음이 고스란한 말이다. 

그는 “동시 쓰기는 아이들의 창의력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사고하는 법과 함께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감성과 인성교육”이라며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진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동시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잡초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꽃들, 무심히 하늘을 날고 있던 것으로 여기던 새, 나무을 스쳐가는 바람과 하늘, 그리고 달을 자신의 삶속으로 이끌어 들이고 나서 나타나는 변화에 그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고백이다. 이번 동시집 <민들레 편지>는 성에 찰리 만무하지만 그런 중에도 이런 그의 마음을 제법 잘 담아냈다. 비록 간결한 문체지만 아이의 마음과 학교의 풍경들에 대한 넉넉한 고찰이 느껴지는 시들이다.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인 전원범 시인은 “명징하고 따뜻한 시로써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이상인 시인의 또 다른 시(동시)를 읽게 돼 색다른 감동이 있다”면서 “언어적 진정성과 깊이 있는 울림을 주었던 그의 시처럼 이상인 시인의 동시 또한 동시의 세 가지 요건인 동심, 시적 발견, 단순 명쾌성 등을 잘 갖춘 작품이 아닐 수 없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모두 오랜 문학적 수련과 교육자로서의 경륜이 빚어낸 소산일 것”이라며 “개구리참외, 오이 덩굴손, 학교 강당, 세계 지도, 강아지 친구들 등을 보면서 미시적 시각의 새로운 발견인 동시 문학의 고양된 모습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다”고 주억거렸다. 

이옥근 아동문학과 역시 “평생을 학교 현장에서 살아온 이상인 시인이 일궈 낸 동시집 <민들레 편지>에는 아이들의 생활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서 “50편의 동시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동화 같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이 돼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무한한 상상의 날갯짓을 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첫 동시집에 대한 평가 치곤 제법 준수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이상인 시인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했다. 1992년 <한국 문학> 신인 작품상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뒤 시집 <해변주점>, <연둣빛 치어들>, <UFO 소나무>, <툭, 건드려주었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등 모두 다섯 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평생 교직에 머물면서 지난 37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쓰고 시 낭송회와 시 화전을 열고, 문집을 만들더니 기어이 지난 2020년 푸른사상 신인 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돼 때아닌 ‘아동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간 송순문학상, 우송문학상을 받으면서 문학적 성취도 일궈낸 그는 현재 광양 진상초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여전히 아이들과 시와 동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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