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백운산이 간직한 세 가지 신령한 기운
지난 호에서 인용한 『광양시지』의 기록처럼 흔히 풍수가들은 백운산이 봉황, 여우, 돼지의 세 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각각 인물, 지혜, 부(富)라는 세 가지 정기로 해석하고 있다.
필자는 백운산의 영험한 기운 덕분으로 세 가지의 정기에 해당 인물들이 이미 정기를 받았거나, 지금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봉황의 기운을 받은 높은 벼슬의 인물이 나타나거나, 여우의 기운을 받은 지혜로운 인물이 탄생하고, 돼지같이 다산의 기운을 받은 여럿의 출중한 인물들이 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옥룡쪽에서 억불봉을 찍은 모습. 선종의 비조인 달마 형상을 닮았다.
옥룡쪽에서 억불봉을 찍은 모습. 선종의 비조인 달마 형상을 닮았다.

벼슬 높은 인물을 탄생시키는 봉황혈
첫째, 봉강에는 봉황혈이 있다. 봉황(鳳凰)은 새 중의 으뜸으로서 상서롭고 고귀함을 나타낸다.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기린ㆍ거북ㆍ용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여겼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한다.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상서롭고 아름다운 상상의 새로 인식된 것만은 확실하다.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 자는데,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한다.

봉황은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한유(韓愈)의 「송하견서(送何堅序)」에서는 “내가 듣기로 새 중에 봉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吾聞鳥有鳳者 恒出於有道之國)”라고 했다.
또, 『순자(荀子)』 애공편(哀公篇)에는 “옛날 왕의 정치가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미워하면 봉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古之王者 其政好生惡殺 鳳在列樹)”라고 하였으며, 『춘추감정부(春秋感精符)』에는 “왕이 위로 황천을 감동시키면 난봉이 이른다(王者上感皇天 則鸞鳳至)”라고 했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황제(皇帝) 57년 추칠월(秋七月, 음력 칠월) 경신에 봉황이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고, 『백호통(白虎通)』에는 “황제시절에 봉황이 동원(東園)에 머물러 해를 가리었으며 항상 죽실(竹實, 대나무 열매)을 먹고 오동(梧桐)에 깃들인다”는 기록이 있다. 황제시절 뿐 아니라 요(堯)ㆍ순(舜)ㆍ주(周) 때에도 봉황이 나타나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중국 고대에는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증명하는 징조로 봉황이 등장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岡(강)은 『설문해자』에 보면 산의 척골(脊骨, 등골뼈)를 뜻한다. 그물망(网)처럼 이어진 산맥(山)의 산등성이를 말한다. 봉강은 봉황혈의 명당이다. 봉강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봉(鳳)의 정기를 타고난 고을”이란 뜻이다. 비봉산(飛鳳山)을 비롯하여 봉계(鳳溪)·상봉(上鳳)·하봉(下鳳)·봉당(鳳堂)·봉양재(鳳陽齋) 등 ‘봉(鳳)’자 지명을 많이 갖고 있다. 이처럼 봉강은 봉황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봉황포란형의 명당은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가 유명하다. 

그렇다고 꼭 한 가지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 마을은 보통 형국론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봉강 조령 아래 마치마을은 천마시풍(天馬施風) 형국으로 볼 수 있다. 천마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형국으로 아주 명당에 해당한다. 봉강은 길지가 많아 광양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현달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봉강의 인물로는 신재 최산두, 구한말 매천 황현, 고려 때 광산 김씨 김약온, 전 건설부장관 김종호, 국회의원 이도선, 부산 시장 안상영 등이 있다.

지혜로운 인물을 탄생시키는 여우혈
둘째, 옥룡에는 여우혈이 있다. 월애촌은 옥룡면 용곡리 초암마을이다. 월하촌이라 하기도 한다. 월애공주는 12살에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갔는데 원 나라 황비가 된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은 없고 설화로만 존재한다. 

월애촌 마을 건너편 산 형국이 운수반월(雲水半月)의 모습이라 그 앞에 바다가 있어야 될 형국인데 옥룡천 월애 마을 앞 냇가가 평평하게 바다를 이루는 모습을 하고 있다.(광양시지, 제4권, 463쪽)

옥룡의 인물로는 월애공주, 도선국사 등이 있는데 모두 설화적이고 신비적인 요소가 강하다. 도선국사의 탄생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도선국사는 호남의 3대 명촌의 하나인 영암 구림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강씨의 태몽에 용이 여의주를 입에 삼키는 꿈을 꾸어 옥룡자로 했다고 한다. 또, 옥룡사에 도선국사가 35년간 정주하였기 때문에 옥룡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도선국사가 옥룡사, 운암사, 중흥사, 상백운암, 하백운암에 머무르셨다고 하고, 당시 지리산 일대까지 10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또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그 당시 360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하루에 한 암자씩만 옮겨 다닌다고 해도 1년이 걸릴 정도로 그 당시 옥룡이라는 곳은 번뇌에 가득 찬 중생들을 구제해 주는 별천지 세상의 불국토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도선국사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가지 있는데, 특히 「옥룡사선각국사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기록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지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돼 있다. 최유청(崔惟淸, 1093~1174)이 짓고 의종 때 문신인 정서(鄭敍)가 써서 전면은 처실(處實)이 후면은 정충(鄭忠)이 새겨 1173년(명종 3)에 건립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옥룡과 백운산은 도선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성웅 전 광양 시장님께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상의 송덕비와 반생구룡 바위
김상의 송덕비와 반생구룡 바위

“광양에는 1000m이상이 되는 산이 5개나 있어요. 송라봉이라고 하는 상봉이 1222m, 신선대가 1198m, 따리봉이 1153m, 도솔봉이 1123m, 억불봉이 1008m예요. 똬리봉은 타불봉과 음이 비슷하고, 한자로 쓰면 타불봉(陀佛峰)이에요. 타불(陀佛)은 아미타불을 줄여 쓴 말이에요.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사방정토(四方淨土)에 있다고 하는 부처의 이름이죠. 모든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은 부처로서, 이 부처를 염(念)하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간다고 해요. 그리고 억불봉은 바구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바구리봉, 억군봉, 업굴봉 등 명칭이 4개예요. 억불봉은 봉강, 옥룡, 진상 등 보는 곳에 따라 모양이 달려 보이기도 해요. 불교식 이름을 붙인 것은 일종의 불국토를 건설하려 했던 도선국사에 대한 보은의 뜻이 아닐까요? 억불봉의 앞부분이 옥룡쪽에서 보면 달마 형상이야”

이성웅 전 시장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평소 광양 사랑의 마인드로 모든 것을 세세하게 보시는 혜안에 탄복을 금할 수 없다. 도선국사는 곡성 죽곡의 동리산 태안사에서 혜철 문하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은 뒤 봉강에 와서 봉황포란형의 초암에서 기거한 뒤 옥룡사를 세웠다.

이때가 교종이 저물고 선종이 막 시작되는 시기로 그의 스승인 혜철도 당나라에 유학하고 구산선문 중 동리산파의 개조가 된다. 선종의 창시자가 중국 육조 시대의 인도 승려인 달마대사이다. 도선은 혜철의 수제자로, 그의 전법을 이어받는다.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나 성경 구절을 걸어 두 듯이 집 입구에 달마도를 많이 걸어둔다. 이는 재앙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것을 맞이하겠다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성웅 전 시장님께서는 도선국사가 비조인 달마대사를 마음에 간직하고 옥룡에서 주석하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이야기하셨다. 또 억불봉을 필자가 보니 전체가 코끼리 모양 같기도 하여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출중한 여러 인물을 탄생시키는 돼지혈
셋째, 광양의 동부 지역은 돼지혈에 해당한다. 돼지는 부(富)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옛날 위생과 보건 관념이 약하고 의학 기술이 덜 발달된 사회에서는 어려서 아이들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풍요 다산이 엄청 중요했다. 돼지는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러므로 돼지를 명예와 부귀를 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보는 것이다. 돼지꿈을 꾸었더니 로또(Lotto)에 당첨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동일하다. 

광양의 동부 지역은 돼지혈의 영향인지 인물이 제법 많이 난다. 국회의원을 무려 6명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황숙현(黃淑玹, 1907~1980), 엄상섭(嚴詳燮, 1907~1960), 김옥주(金沃周, 1915~1980), 조재천(曺在千, 1912~1970), 김옥주의 형인 김선주(金善周, 1909~1975), 유통회사를 경영했던 김명규(金明圭, 1942~2019) 등이 있다. 김옥주는 진상 지원리 지랑 마을 출신으로 양정고등보통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 법률과를 졸업했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 광양은 우리나라에서 고위공직자들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신 안영신 선생님께서는 변방에 불과한 광양을 전국 중앙 무대에 꽃봉오리마냥 올려놓으신 분이 엄상섭, 조재천, 김옥주라고 한다. 이 세 분이 해공 신익희(申翼熙, 1894~1956)와 뜻을 같이해 보좌하신 분들이다.

신익희는 1950년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맞서 1956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인물이다. 호남에서 목포, 여수, 순천을 제치고 지방유세를 광양에서 맨 처음 했다고 한다. 이 세 분이 중앙에 터를 닦아 1970, 80년대 광양의 인물들이 대거 출현한 배경이 됐다고 본다. 

우리나라 비보풍수는 도선국사에게서 비롯된다. 수구막이 숲, 해태상, 장승 등을 세우는데 조산(造山)도 하나의 방법이다. 조산(造山)은 마을의 지맥이나 수구(水口)가 허한 곳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읍락비보(邑落裨補)이다. 이를 위해 인공적으로 언덕이나 산을 쌓아 나무를 심어 가꾸는 방법이다. 조산(朝山)은 마을 앞에 있는 산이고, 조산(祖山)은 마을 뒤로 이어지는 모든 산을 말한다. 흔히 안산(案山)은 일종의 조산(朝山)으로, 마을 앞에 가까이에 있는 낮고 작은 산을 말한다. 지랑마을의 동쪽 계단식 논의 끝자락에 커다란 돌들이 모여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동산이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일종의 조산(朝山)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김상의 옹의 비문이 세워져 있고, 바로 옆 큰 바위에는 반생구룡(盤生九龍, 구룡이 태어난 곳) 글귀가 빨간색으로 음각되어 있다. 1950년대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김옥주의 글씨라 한다. 구룡은 김상의(金商義, 1873년생)의 아들 9형제를 말한다. 김상의는 자(字)가 서임(瑞任)으로 진상면민을 위한 방천을 구축하고, 마을진입로를 개설하였으며, 진상보통학교 설립지원 등 면민을 위하여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구룡이라 칭한 것은 한 가정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었으며, 높은 관직에 도달한 인물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또 지랑마을은 우리나라 풍수사가들에게 자손이 번창하고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지네 형국으로 알려진 아주 유명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구룡이 나왔으니 이가 입증된 셈이다. 좋은 명당일수록 풍수사가들은 형국을 다르게 보기도 한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