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19

오전 11시, 장날이 아닌 장터는 한가로움을 넘어 썰렁하다. 옥곡장은 4. 9일 장날이 되면 면소재지 오일장이라도 광영 금호 중마 사람과 진상 진월 사람 그리고 읍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제법 북적북적하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 장터에서 나와 새길이 나느라 혼잡한 공사장을 지나 옥곡천으로 나왔다. 길가 가을걷이를 끝낸 논에서 짚단을 묶어 차에 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옛 모습으로는 정겹고 요즘 모습으로는 생경한 풍경이다. 콘크리트 길과 데크길을 따라 아내와 함께 걸었다. 고속도로의 소음이 장터와 들판의 한가로움을 채우듯 소란하다. 다만 가을볕 따사로움이 이 모든 맞섬을 적당히 조율하고 있었다. 이런 날 적당한 점심 한 끼는 뭐가 좋을까.

꼬솜제과. 옥곡장터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소금빵으로 꽤 멀리까지 소문난 곳이다. 한 번 맛 들이면 그 고소함과 간간한 게미짐에 깊이 빠져든다. 더불어 밤식빵, 쌀팥방, 앙버터소금빵 등도 좋아한다. 빵은 쌀과 밀가루의 비율을 8:2로 하여 먹고 나서 속이 편하다. 빵만큼 커피 맛이 좋아 지나며 커피를 자주 사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도심에서 벗어난 변방 장터에 그곳 장터에서도 중심을 벗어난 곳에 자그맣게 위치한 가게, 그러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초라하지 않은 단단함과 새로움, 그리고 사람들을 끄는 맛과 힘을 보여주는 가게가 ‘꼬솜제과’다. 장날엔 9시에 문을 열고 장날이 아닌 날에는 12시에 문을 열고 빵이 나온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무다. 빵과 커피를 더 먹어봐야 할 일이지만 왠지 자유로움이 읽힌다. 

우리 지역에 이런 작은 빵집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응원한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 중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가 빵집을 하는 아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나중에 아들부부의 노력을 응원하는 구절이 생각났다. “너희가 만드는 빵은 여타 값싼 빵과는 다른 가치가 있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빵을 가지고 접근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의미가 있다. 그것을 풀뿌리 차원에서 부딪히는 다루마리(빵집이름)를 응원하마. 그러니 힘내라” 꼬소한 소금빵을 씹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우리지역의 작은 가게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책갈피 꽂아 둔 한 문장을 오늘도 상에 올리니 밥도 드시고 마음의 양식도 한 젓가락 하시면 좋겠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한 결정적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 공간이 될 수 없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로 낙후하게 될 뿐이다” 〈신영복 著, 변방을 찾아서 중〉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오늘은 옥곡장 꼬솜제과에 들러 가을 소풍, 길 친구 같은 빵과 커피로 한 끼 잘 먹었습니다. 한적한 둘레길을 걸으며 만나는 나무와 하늘과 사람들 모두 가을색이 만연합니다. 사색하기 좋은 날들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변방성’ 즉, “'변방'은 지역적으로도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또 그곳의 성격 또한 주류 담론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변방을 단지 주변부의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된다. 변방은 창조의 공간이며, 새로운 역사로 도래할 열혈 중심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곱씹어 봅니다. 몸과 맘이 배부른 가을입니다. 다음 한 끼는 뭘 먹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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