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마동에서 옥룡으로 가는 지름길은 사곡에서옥룡 산남리까지 이르는 사곡로이다. 구불구불산길을 달리다 보면 광덕사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거기서부터 목딩이재 내리막길을 만나게 된다. 곧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을 지나서 좀 더 내리막길을 가면 주차장이 도로가에 인접해 있는곳에 눈이 머문다. 광양읍에서는 동천을 따라 가다가 솔밭섬이 보일 즈음 오른쪽으로 재동교를건너면 만날 수 있다. 오갈 때마다 주차장 선이두 개여서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다.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만나게 되는 사람 인연처럼 마을도 인연이 있어야 만나나 보다. 오늘은 이 재동마을에 인연이 닿는다.

이야기터 우물

추수하느라, 요즘은 생강 캐느라 바쁘다는 재동 이장님과 취재 날짜를 조율하는 동안 마을을둘러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선만 전 이장님과 일정을 맞추느라 늦어졌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마을회관을 지나 골목을 걷다가 길 높이보다한참 낮은 곳에 있는 우물을 발견했다. 마침 손빨래하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나 무척이나 반가웠다. 왜 세탁기 안 쓰시냐고 했더니 땀도 흙도많이 묻어서 그날 입은 것 그 날 빨아 넌다고 세탁기보다 내 손이 더 낫다고 하셨다. 비누도 손수만들어 쓰신단다.

겨울에 따습고 여름에는 등목을 못 할 정도로찬 우물이여. 옛날에는 부락 사람들이 이 우물 하나로 다 먹었어. 빨래할 때 수다 떠는 재미도 있었네화재 진압도 하고 다용도로 쓰였지만 상수도가 들어온 후에는 빨래를 하거나 간이 허드렛물로만 사용한다고 하셨다. 재동과 떨어져 있는동전 마을에도 우물이 3개 있다고 하는데 필자가확인한 바로 지금은 메워져 흔적만 남아있다.

재궁(才宮)과 동전(東田)을 합한 재동(才東)

그 후에도 재동 마을을 지날 때마다 언제 이장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다가 드디어 날을 잡을 수있었다. 이장님은 누군가를 트럭에 태우고 윗마을로 가야 하니 뒤따라오라고 하셨다. 뒤따라간마을은 늠름한 당산나무가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마을이었다. 차 한 대 정도 지날 수있는 길을 따라 동전경모당이라고 쓰인 단층 벽돌 건물에 도착했다. 이선만 전 이장님이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이건준 이장님은 올해 이장직을 맡으셔서 아는 게 별로 없다고, 동전 마을에 사는 이선만 전 이장님이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어서 이리로 온 거라고 하셨다이선만 전 이장님은 이장직을 3년만 한다는 게또 하게 되고 또 하게 되고 그러다가 21년이 되었다고 하신다.

여기 동전은 남쪽 산이 소가 풀 뜯어 먹는 것같이 보인다고 목동(牧童)이라고 했다가 밭 동쪽에 있다고 동전(東田)으로 바뀌었어. 저 아랫 마을은 순천 박씨가 처음 살았고 그 문중 제실이 있다고 제궁으로 부르다가 난중에 두 마을 첫 자를따서 재동(才東)으로 부르게 된거여

두 마을이 떨어져 있으면서 한 행정구역으로묶여 있으니 일하는 데 불편이 많을 것 같다고 했더니 이장님은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서 두 마을이 한 운명 공동체라고 하셨다. 독립 마을로 분할하길 원했으나 인구가 못 미쳐 두 마을이 합해질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호열자를 막은당산나무와 청정수 재동제(才東堤)

동전 마을 입구 당산나무는 1982년 보호수로지정 당시 300년 수령인 느티나무다. 높이 18m,둘레 4.8m로 기록되어 있다. 이선만 이장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호열자(콜레라)가 유행할 때였다. 동네 어른이잠자고 있는데 패랭이를 쓴 두 사람이 당산나무를 지나 마을로 들어오고 있더란다. “어디 가냐?”물으니 이 동네 개 잡으러 갑니다라고 해서 우리 마을에는 개가 없으니 가거라고 했더니 돌아서서 가버렸다고 한다. 그 꿈을 꾼 후 다른 마을에는 호열자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이 마을은 당산나무 신이 지켜주어서 무사했다고 믿고있다고 한다.

당산나무의 신령스러움은 풍물놀이에서도 나타난다. 정월 초하루나 보름에 풍물놀이를 할 때 서투른 사람이 징을 치면 징이 깨져서징을 여러 개 깼다고 한다. 지금도 무속인들이 찾아와 나무에 대고 빌거나 굿을 한단다.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인정받은 나무지만 당산제는 지내지않는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마을 동쪽에 있는 재동제(才東堤)라는 저수지는 옥룡에 있는 4개 저수지 중의 하나로 1943년에 준공되었다. 이장님은 짐승이 빠져 죽은 일조차 없이 깨끗한 곳이라고 자랑하신다 .

지명대로 이루어진다

재동에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동전마을 남쪽 도령골은 도령이 소에게 풀을 뜯기면서 새를 보는 곳이라 샛골이라고도 한다. 승려가죽어 화장했다고 전하는 송장등에는 중 바위가있고 골짜기는 호박통곡이라 부른다. 송장이 많아 까마귀골, 동전에서 죽림리로 넘어가는 곳은산고개 밑이라 하여 목딩이재로 부른다. 동전 마을 형태는 선박 모양이어서 지하수가 안 나온다고 한다. 20군데 이상 120m까지 파는 수고를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물이 나와 배가 가라앉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지명에는 대부분 유래가 있으니 마을마다 당산나무가 있는 것처럼 신기한 일이다. 쇠 섬이라 부르던곳에 광양제철소가 생긴 것이나 진상에 있는 낙수 마을이 수어댐 밑에 위치하게 된 것도 그렇다

동전 마을은 산 중턱에 앉은 마을이라 드문드문 돌담을 끼고 계속 외길 오르막이다. 마을 끝까지 올라가 보고 싶다 했더니 감사하게도 이선만이장님이 농노에 쓰는 전동차를 태워주셨다. 중간에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뒤로 한참 물러나야하는 구조는 좁은 시골 마을길의 한결같은 형태다. 마을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나고 뒤쪽으로 감밭이 나타났다. 타지에 살던 가족들이 와서 함께 주렁주렁 열린 감을 따는 화목한 모습도 보였다.

경찰을 많이 배출하고 재동계로 단합한 마을

마을 출신 인물로는 옥룡면 중대장을 지내고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김상중 씨, 여수경찰서 수사과장(경정)을 지낸 황순현 씨, 21대 옥룡면장과 제35대 광양향교 전교를 지낸 서기용 씨, 사법고시에 합격해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에 재직했고 현재 광주지방법원 가정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민웅 판사 등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 유독 경찰 출신이 많다고 한다. 황민웅 판사의 사촌 형님 황학래씨(76)는 재동에서 이건준 현 이장님과 트럭을같이 타고 오신 분이다. 황학래 판사에 대해 자세히 인쇄를 해 오셔서 너무 감사했다

애경사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3, 4일씩 그 집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일을 치루었는데, 아직도애경사에 열일을 제쳐놓고 협동하는 풍습이 있는마을이라고 하셨다. 재동계가 결성되었을 때 타지에 나가 사는 이들도 마음을 합해 마을을 지켜나갔다고 한다.

과수가 주 수입원

재동 마을은 벼농사보다 매실과 감, 밤 등 과수가 주 수입원이다.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병충해가 심해 수확량이 얼마 안 된다. 겉보기는 풍년같지만 심한 경우 지난해에 대봉 250박스 수확하신 분이 올해는 대봉 2박스 수확에 그칠 만큼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멧돼지가 농사에 극심한 피해를 준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추수 때엔 더 극성이고 밤사이 농산물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시에서 멧돼지를 처분해주었으면 하셨다.멧돼지는 좋은 과일만 골라 먹고 사람 손 탔다고의심되면 피하는 영물이란다. 이선만 전 이장님도 멧돼지 때문에 고사리 농사를 몽땅 망친 적이있다며 멧돼지 퇴치를 강조하셨다. 동네에는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노루, 수달 등 짐승들이 많이 다녀서 청정지역이라는 증거가 되긴 하지만농사 피해는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스러운 부분으로 보인다.

마을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들

160m 정도 남기고 중단된 농노길 정비, 차 한대 겨우 커브 돌 정도의 골목길과 불편한 돌담 정비, 마을을 돌아 나올 수 있는 외곽도로 증설 등이장님은 숙제가 많다. 재동교는 옥룡과 봉강, 중마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모서리가직각이어서 차가 긁히지 않도록 항상 긴장해야하니 부드러운 타원형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계셨다. 광덕사 입구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내리막길에는 수로가 없어서 산에서 물이떨어져 질척거린다. 겨울에 미끄러지면 왼쪽에있는 집까지 위험하다고 이건준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늘 질척거려서 필자도 미끄러질까 봐 항상노심초사하는 곳이다.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공사를 해주었으면 하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재동을 포함해 4군데 정도 CCTV를 설치하면 훨씬살기 좋은 옥룡 전체가 될 거라고 홍익인간의 정신을 보이신다.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협조도 지속적으로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무슨 일이든지 책임을 맡은 사람은 해야 할 일도 많고 아쉬운점도 많다. 책임을 맡는 것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노인정을 좋게 지어야

제동전경모당은 2017년에 광양에서 처음으로 지은 노인정이다. 건립시 자부담 500만원이 필요해백방으로 구한 끝에 희사해 주신 분들이 있었다그 돈으로 친구와 손수 경모당을 지었다. 완공하고 나서 오히려 1600만원이 남아 땅을 매입해 길을 넓히고 주차장을 만들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이 다 희사해 주신 분들이여.이 회관을 지은 분들이지현판에 빼곡히 적어놓은 내용이 감동적이다. 현금뿐 아니라 시계, 이불,화환, 가스레인지 등을 희사한 것까지 기록되어있다.

그때 우리 손으로 지어서 부실하고 손 볼 데가많아.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이젠 노인정을 정말좋게 짓는 것이여노인정을 꼭 좋게 지어 달라는바람을 써달라고 하신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도 이선만 전 이장님이들려주신 여러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었다. 배려해주신 이건준 현 이장님,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신 황학래 어르신과 중간에 오셔서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신 하종호 어르신(69)께도 감사드린다.

목딩이재를 넘어 재동을 지날 때마다 한 번 더 돌아보며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될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재동 마을도 그렇다.

글사진 박옥경-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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