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졸지간에 광양 봉수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08봉수 박사와 함께하는 봉화산 답사뒤풀이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했으니, 예산과 장소 등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봉수 박사 두 분이 선뜻 발표를 허락해 주고, 뜻 있는 분들의 후원이 이어져 그럭저럭 학술심포지엄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도와주신 분들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문화재청 주관 봉수 유적학술대회에 참가하다

문화재청은 지난 11월 전남 여수 돌산도봉수를 출발해 서울 목멱산봉수에 이르는 제5로 직봉 노선상에 위치하는 61개 봉수 유적 중 16개소를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 2022년 제2로 직봉의 14개 봉수유적의 사적 지정에 이어, 5로 직봉 16개 봉수유적도 제도권 내에서 보존·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제5로 직봉 노선상에 위치하는 다른 봉수 유적도 추가적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를 독려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문화재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26일 대전kw컨벤션센터에서 봉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12월 6일(수) 대전kw컨벤션센터에서 문화재청 주관 ‘봉수 유적’ 학술대회에서 ‘봉수 유적의 교육 현황과 홍보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는 필자
12월 6일(수) 대전kw컨벤션센터에서 문화재청 주관 ‘봉수 유적’ 학술대회에서 ‘봉수 유적의 교육 현황과 홍보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는 필자

어쩌다 봉수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봉수유적 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중등학교 역사교사의 경력을 가진 필자에게 봉수유적의 교육 현황과 홍보 방안을 발표해 달라는 봉수 박사들의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봉수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세 분 있는데, 그중 23호 박사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그동안 두 분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분들을 이번 광양 봉수 학술대회에 모실 속셈이 깔려 있어 필자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발표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나브로 원고 제출 마감 시간이 다가와 후회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다. 고 교과서에 나오는 봉수 서술을 분석해 보니 안타까움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예전에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봉수를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과목을 통해 봉수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있었다. 물론 그 수준은 봉수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정도였지만, 그 이후 상급 학년과 학교에서 더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중에서는 출판사에 따라 봉수 내용을 전혀 서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광양의 건대산봉수는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가?

이번 문화재청 주관 봉수 유적학술대회의 부제는 첫 연속유산, 봉수 유적의 가치 제고를 위한 향후과제였다. 봉수는 단독유산으로 보다는 연속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다. 한반도에 존재하였던 5대 노선의 600여 개 봉수는 다른 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대응 봉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연속성,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연결성을 지닌다. 그래서, 필자는 봉수를 연속유산을 넘어 연결유산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2005년, 광양 건대산봉수대 정상 연대의 모습 제공=마한문화연구원 제공
2005년, 광양 건대산봉수대 정상 연대의 모습 제공=마한문화연구원 제공

예를 들어, 광양의 건대산봉수는 여수의 진례산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순천 성황당봉수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제5로 간봉에 해당하는 봉수이다. 건대산봉수의 역할은 여수 돌산도봉수에서 발생한 상황을 서울의 목멱산(남산)봉수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순천 부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봉이 아닌 간봉으로 분류된다.

최근 문화재청이 사적으로 지정한 봉수 유적은 모두 직봉에 해당되는 봉수였다. 그런데 이번 봉수유적 학술대회에서 추후엔 간봉도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과연 광양의 건대산봉수는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을까?

지난 10봉수 박사와 함께하는 봉화산 답사때 한 참가자가 이 질문을 했는데, 홍성우 봉수 박사는 단호하게 건대산봉수는 이미 많이 훼손되어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울러 그렇다고 조선시대 광양현의 유일한 봉수였던 건대산봉수의 역사적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그 장소성은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건대산봉수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참고로 건대산봉수는 지금의 구봉산 전망대가 있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번 학술대회 때 발표할 예정이다.

1805년, 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이은철 소장)
1805년, 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이은철 소장)

앞으로 건대산봉수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이번 광양 건대산봉수 학술심포지엄의 과제 중 하나가 바로 건대산봉수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봉수 전문가와 광양 시민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비록 건대산봉수의 핵심인 연대(煙臺)가 있었던 정상 부분의 유적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유적이 있다.

1872년에 제작된 광양현지도를 보면, 봉수대 바로 아래에 봉수군들이 기거하였던 봉대직가(烽臺直家)’가 보인다. 지금까지 구봉산과 봉화산 봉수에 대한 학술조사는 두 차례 실시되었다. 1999년 순천대박물관에서는 문헌과 지표조사를 했고 2005년 남도문화재연구원에서는 시굴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두 학술조사 모두 산의 정상 부분 중심으로 간단히 조사하는 것에 그쳤다. 봉대직가를 찾아내는 것이 광양에 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건대산봉수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야 한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이다. 눈 밝은 이들이 건대산봉수와 관련된 고문헌과 고지도를 샅샅이 찾아내 일반인들이 보기 쉽게 정리해야 한다. 2017년 필자가 광양 지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골동품 수집가의 호의로 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를 구했다. 이 자료는 지난 20213월 광양지역사연구회 창립기념 특강 때 처음 공개했는데, 이번에 내용을 보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건대산봉수 관련 자료를 모아 구봉산 전망대 홍보관에 전시해야 한다. 현재 구봉산 전망대 홍보관에는 봉수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다. 그래서 지역의 시민과 학생들이 구봉산 전망대에 가서도 봉수에 관한 지식을 업그레이드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언젠가 시립광양박물관이 건립되면 필자는 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를 기증할 생각이다. 실은 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는 조각난 자료를 여러 겹의 다른 문서 위에 배접해 놓은 상태이다. 향후 시립박물관이 건립돼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배접된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면 더 많은 정보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구봉산 전망대(건대산봉수)를 관광 상품으로만 보는 자는 역사의 산을 보지 못한다. 모쪼록 이번 광양 건대산봉수 학술심포지엄을 통하여 건대산이 역사의 산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제공=이은철 광양지역史연구회 ‘마로희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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