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 광양지역史연구회 ‘마로희양’ 대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변하듯 구봉산도 끝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나라의 안위를 지키는 최전방 군사통신시설로서의 봉수대 역할은 근대화와 더불어 막을 내리고 이제는 관광 활성화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한 구봉산의 변천 과정을 동시대의 역사가, 람이 기록해 놓은 것이 구봉산의 역사이다. 후세 사람들은 그 역를 통해 누가 언제 무엇을 왜 하였는지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 역사적 평가를 담는다.

이미 결론이 났다, 구봉산 정상에 타워 설치는 불가함이

광양시와 지역 기업이 구봉산 정상 체험형 조형물 설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소수의 다른 목소리가 있지만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대세는 힘이 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중에 구봉산을 해코지한 역사에 변명을 늘어놓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필자는 지난해(2023)에 구봉산 봉수의 역사와 관련해 지역신문에 3차례에 걸쳐 기고를 했다. 이번에는 조형물 설치를 반대하는 글을 준비하는 중에 박철수 시의원의 체험형 조형물은 구봉산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인터뷰 기사(2023.03.04. 광양시민신문)를 보았다. 이 기사에서는 구봉산에 조형물을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경제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소상하게 다루고 있었다. 반갑고 힘이 나는 기사였다.

실은 구봉산에 조형물을 설치하고자 하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9년 즈음에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광양뉴스 2018.01.12.)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9) 구봉산 정상에 타워를 건립하기 위한 최종용역까지 마무리된 상황이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무산됐다. 용역을 맡은 전남대 산학협력단에서 지질조사를 먼저 한 후 전망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산학협력단은 당시 전망대 높이를 73m 안과 66.3m 안을 제시했는데 지질조사를 완료한 후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망대가 크면 부지 여건을 감안할 때 구조상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구봉산 자체로서 전망 기능으로 훌륭한데 여기에 높은 전망대나 타워를 건립한다는 것은 경관도 해칠 뿐만 아니라 옥상옥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결국 전망대나 타워 건립에 앞서 기본적인 지질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바람에 타워 건립은 좌초될 위기에 몰렸다.”

요약하면, 구봉산 정상 광양타워건립은 지질조사 미비와 산 정상에 타워를 건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반대 여론에 부딪쳐 결국 타워 건립은 흐지부지되고 대신 2013년에 현재의 구봉산 전망대를 건립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체험형 조형물과 이전의 광양타워가 구봉산 정상에 설치될 수 없는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구봉산의 지질이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단단해지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역유산으로 지정하자, 구봉산 봉수를

구봉산 봉수와 관련하여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는 람으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시기가 있다. 2013년에 구봉산 정상에 전망대를 조성하고 메탈아트 봉수를 설치할 때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했다. 구봉산 정상에 남아 있던 봉수 유적을 제대로 발굴하지 않고 그냥 개발해 버린 것이다. 당시 실무 담당자의 얘기로는 발굴 경비와 시간의 촉박함 때문이라고 했다.

필자는 학교에 재직 중일 때라 상황을 잘 몰랐고 알았더라도 막을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필자는 한결같이 아무런 힘이 없다. 그저 광양의 지역사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다면 구봉산 정상의 높이는 그대로 유지했고 그곳에 봉수가 있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현대식 봉수 구조물을 세웠다는 점이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一勝一敗 兵家常事)’이지만, 두 번 실수는 수준이고 실력이다. 광양의 중요한 역사 유적인 구봉산 봉수에 대한 두 번 실수는 없어야 함에도 작금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구봉산 정상에 체험형 조형물 설치를 위한 작가가 선정되고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늦었지만 구봉산 봉수를 광양시유산으로 지정하고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존하는 지역유산도 지키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국가유산(국보)인 쌍사자석등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웃음거리가 된다.

국가유산 기본법에 따라 20245월부터 '문화재'라는 명칭이 '국가유산'으로 바뀌고,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러한 명칭 변경은 기존에 재산적 가치의 관점으로 보았던 문화재를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과 맥락을 같이 하는 시의적절한 변화로 보인다.

이제 광양의 문화재는 지역유산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고, 지역에 사는 우리는 지역유산을 보존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시기이다.

2023년 울산대곡박물관이 발간한 울산봉수를 소개하는 『봉수, 횃불과 연기의 이어달리기』
2023년 울산대곡박물관이 발간한 울산봉수를 소개하는 『봉수, 횃불과 연기의 이어달리기』

박물관은 한 도시의 품격이다

인구 100만이 넘는 울산광역시와 15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우리 광양시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하여튼 박물관을 기준으로 두 도시의 차이를 비교하면 박물관의 유무이다. 그것도 울산에는 시립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암각화박물관, 고래박물관, 대곡박물관 등 여러 개의 다양한 박물관이 있고, 우리 광양에는 단 하나의 박물관도 없다. 박물관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봉수와 관련하여 얘기하면 이러하다.

2023년 울산대곡박물관은 2로 직봉-울산 부로산 봉수의 사적 지정(2023.01.10.)을 기념하여 봉수, 횃불과 연기의 이어달리기특별전을 기획하고 책자를 발간했다. 필자가 지금까지 본 지역 봉수 관련 서적으로는 가장 알차고 예뻤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존재인 봉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는 멋진 책을 만든 힘은 바로 박물관의 존재라 생각한다.

2023년 울산대곡발물관 제1차 특별기획전 포스터
2023년 울산대곡발물관 제1차 특별기획전 포스터

그뿐만이 아니다. 울산대곡박물관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하는 체험프로그램 <봉수를 올려라!>’를 진행했다. 온 가족이 직접 봉수군이 되어 봉수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거화재료를 모은 다음 봉수 신호를 보내고, 종이상자를 이용해 봉수를 만들어 보는 체험으로 진행했다. 체험을 통해 과거 통신 수단인 봉수에 대해 이해하고,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구봉산 정상 체험형 조형물 설치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우리 광양시와는 품격이 다르지 않는가? 왜 우리 광양시는 항상 다른 도시에서 이미 유행했던 철 지난 것들만을 베끼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참신하고 선도적인 아이템을 개발하지 못할까? 바로 역사와 문화 관련 전문가와 기관이 광양에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유무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여기서 일제강점기의 쇠말뚝과 최근 흥행하고 있는 영화 파묘(破墓)’를 굳이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당연한 덕목이 아닌가.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지역의 랜드마크도 좋고 체험형 놀이시설도 필요하다. 인정한다. 하지만 광양의 역사적 상징성을 담고 있는 구봉산 정상을 훼손하면서까지 꼭 해야만 하는가.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 구봉산 정상 체험형 조형물 설치 장소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길. 지금 우리가 구봉산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고, 그 역사는 지금 사람들의 결정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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