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지역史연구회 ‘마로희양’ 대표 이은철

무릇 역사는 부침(浮沈)이다. 쇠함과 번성함의 반복이다. 현존하는 문화재로 볼 때 광양이 문화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9세기이다. 이 시기는 통일신라가 문화적 전성기에 다다랐던 8세기 중엽, 즉 경덕왕 시기에 만들어진 중앙의 고급문화가 지방으로 전파되던 시기였다. 바로 그때 광양과 구례가 전남동부 지역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유물이 바로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다.

발굴조사로 사찰의 본디 이름을 찾자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은 현존하는 광양의 최고(最古)·최고(最高)의 불교 유물이다. 각각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광양 유일의 국가지정문화재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9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통일신라 중앙의 불교문화가 지방으로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광양에도 이즈음 불교가 전파되면서 현재의 중흥산성 내에 사찰이 건립되고 탑과 석등이 세워진 것이다. 그 결과 광양의 석탑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이나 부여의 정림사지 석탑이 아닌 불국사 석가탑을 닮고 있다. 

예술 작품은 시대 상황의 산물이다. 때로는 문자 기록보다 더 정확하게 그 시대 정신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많은 문자 기록이 정치적 승리자의 입장에서 후대에 조작되었음에 비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만든 미술 작품에는 그 시대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 작품을 통해 그 시대 정신을 읽어 내기 위해 애를 태운다. 이러한 학문 분야가 바로 미술史이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은 광양의 가장 중요한 문화재임은 분명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많다. 석등과 석탑이 있었던 사찰의 원래 이름을 몰라 불교 유물 앞에 ‘산성’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유일한 국보인 석등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1월에 서울로 반출되어 여러 곳을 전전하다 현재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흥산성과 현재의 중흥사 원경, 사진 가운데 부분에 중흥산성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복제품)이 있다.
중흥산성과 현재의 중흥사 원경, 사진 가운데 부분에 중흥산성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복제품)이 있다.

하루빨리 사찰의 원래 이름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문헌 조사와 병행해서 석탑이 있는 주변을 샅샅이 발굴해야 한다. 시굴 조사부터 전면 발굴까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진행해 사찰명이 기록된 유물과 석등의 원위치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어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석등이 제자리인 광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마침 광양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광양시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을
제자리로’ 운동을 주도하다

희소식이다. 광양시가 2023년 12월 광양시 고향사랑기부제 제1호 기금사업으로 선정된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선포식을 개최한 이후, 지난 1월 22일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범시민 서명운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광양시에서 ‘광양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5만 광양시민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광양시에서 ‘광양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5만 광양시민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서명운동은 온오프라인 병행(QR코드, 서명부 작성)으로 진행되며 광양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서명하거나 가까운 읍면동사무소에서 서명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우리 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함께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며 “광양을 떠난 쌍사자석등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범시민 운동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장님이 직접 서명운동을 권장하고 있으니 정말로 반가운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광양시는 홍보캠페인 전개, 광양 문화유산 바로알기 운동, 학술 세미나 개최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광양시청 홈페이지에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은 없다

광양시가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시청 홈페이지의 국가지정문화재 소개란에는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없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마로산성과 옥룡사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옥룡사 동백나무 숲과 광양읍수&이팝나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도장, 보물로 지정된 중흥산성 삼층석탑 등 총 6점의 국가지정문화재만 소개되어 있고,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광양교육지원청에서 2022년 발간한 지역 내 초등학교 3학년들을 위한 『우리고장 광양 3』이라는 사회과 지역화 교재에도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광양에 소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일까? 아니면 필자가 찾지 못한 것일까? 

광양시청 홈페이지 국가지정문화재 소개란에 광양의 유일한 국보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광양시청 홈페이지 국가지정문화재 소개란에 광양의 유일한 국보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후자면 다행이지만 전자면 하루빨리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 간단한 내용 소개의 수준을 넘어 아주 특별한 코너를 만들어 광양시민들이 해방 이후 줄기차게 추진해 온 중흥산성 쌍사사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의 역사를 소상히 실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되는 살아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후 진행되는 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명 참가자의 인원을 읍면동별로 나누어 게시하고, 발굴과 학술대회 동영상을 제작해서 올리고, 국보를 되찾은 다른 지역의 사례를 소개하는 등 쌍사자석등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탑재해야 한다.

광양교육지원청에서 발간한 관내 초등학교 3학년들을 위한 『우리고장 광양 3』 교재에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광양교육지원청에서 발간한 관내 초등학교 3학년들을 위한 『우리고장 광양 3』 교재에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변죽도 울리고 정곡도 찌르고
석등은 절대 하루아침에 광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여론 조성을 위한 변죽도 울리고 핵심인 정곡도 정확하게 찔러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 광양이 현재 추진하는 서명운동과 앞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발굴과 학술대회 등은 석등을 찾아오기 위한 변죽이다. 열심히 변죽을 울려야 석등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변죽만 울리고 정곡을 찌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문화재 당국이 석등의 반환을 미룰 명분을 찾지 못하도록 정곡을 조준해야 한다. 그동안 문화재 당국은 석등을 돌려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유지 관리’의 문제를 언급했다. 이 논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쌍사자석등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광주박물관보다 더 완벽한 시립광양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춘 시립박물관을 건립해 유지 관리의 염려를 완벽하게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필자가 시립박물관 건립에 애면글면하는 이유는 단지 쌍사자석등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광양에서 발견되고 출토된 다른 모든 문화유산을 위해서다. 또 앞으로 출토될 미래의 문화재를 광양에 보관하기 위함이다. 만약 중흥산성 삼층석탑 주변을 시굴 조사했을 때 국보급 유물이 출토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당연히 ‘발견·발굴문화재의 국가귀속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되어 다른 지역에 소재하는 기관으로 이관된다. 광양에는 문화재를 보관할 아무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만들어지던 그 순간은 ‘오래된 미래’이다. 광양의 찬란한 과거이자 앞으로 재현해야 할 희망찬 미래이다. 이처럼 과거는 미래와 변증법적 대응관계다. 서로 만날 수는 없지만 필연적인 운명 공동체이다. 하지만 그 둘의 운명은 현재의 우리에게 달려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도중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보고서를 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해서 일독했다. 국립박물관다운 고품격의 보고서였지만 광양 시민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보고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제공=이은철 광양지역史연구회 ‘마로희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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