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으로 돌아온 영화감독 조은란
조은란 감독이 선택한 ‘진짜 이야기’

조은란(44) 영화감독 겸 강사    
조은란(44) 영화감독 겸 강사    

전남 광양 어치계곡, 고사리밭 너머로 감나무와 매실나무가 늘어진 이곳에 한때 서울 상업영화계를 누비던 영화감독 조은란(44)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번아웃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자연, 그리고 다시 붙잡은 영화. 그녀는 지금, 교실과 현장을 오가며 삶을 영화로, 영화를 삶으로 가르치고 있다.

10년의 현장, 그리고 떠남
조은란 감독이 영화를 처음 꿈꾼 건 초등학교 입학 전후 무렵이다. 영화 스크린에 상상을 담고 싶었다는 순수한 열망은 곧 직업이자 삶이 되었고, 2003년 영화 ‘여자, 정혜’를 시작으로 상업영화 제작 현장에 입문했다. 이후 ‘우아한 세계’, ‘회사원’, ‘셔틀콕’ 등 10여 편의 상업영화에 참여하며 10년을 바쁘게 달렸다.
 

단편영화 ‘끝과 시작’ 촬영 현장    
단편영화 ‘끝과 시작’ 촬영 현장    


하지만 저예산 영화 ‘셔틀콕’ 제작을 계기로 조 감독은 번아웃을 경험한다. 치열했던 서울 생활, 도제식 구조 속에서 흘려보낸 20대는 성취보다 공허함을 남겼다. 필모그래피에 이름만 남은 것 같았다는 회한은 곧 영화와의 거리 두기로 이어졌다. 휴대전화를 끊고, 문화생활과 단절한 채 보낸 1년의 침묵 끝에 그녀는 ‘교육’을 통해 다시 영화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교육에서 피어난 창작의 에너지
현재 조은란 감독은 전남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영화 리터러시(문해력)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 전달을 넘어 영화의 역사와 연출 의도, 상징을 해석하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까지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현장 모습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현장 모습


이러한 교육의 연장선에서, 그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다시 꺼냈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제작된 단편 ‘끝과 시작’은 보호시설 출신 청년들의 자립을 그린 작품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삶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다.

특히 인상 깊었던 사례는 그녀가 시나리오 멘토를 했던 고등학생이 촬영 감독이 되어 ‘23년 남도영화제에 상영된 ‘끝과 시작’에 함께한 것이다. 

조은란 감독은 “촬영이 끝난 뒤에서야 멘토링을 받았던 학생이 이번 작업에 함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영화를 계기로 그 학생도 영화 창작에 뜻을 품었고, 지금은 순천에서 ‘옥상필름’이라는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때 가르쳤던 학생이 어느새 동료 창작자가 되어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큰 감동과 보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삶’을 가르치는 교육
조은란 감독은 영화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대학을 택하기보다는 현장 경험과 공모전 도전을 권한다. 지역 미디어센터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영화 세계에 접근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붙들고 표현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 감독은 “영화는 제7의 예술이다. 영화 하나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다양한 지식과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깊어진다”며 “영화인을 꿈꾸는 학생들의 삶 한복판에 작은 이정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꿈이자 생업이었던 영화는 때로 삶의 주체성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조은란 감독은 결국 영화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끝을 다시 상상하고 있다.

24년 남도 인 영화 영화상영회에서 모더레이터를 하는 조은란 씨 
24년 남도 인 영화 영화상영회에서 모더레이터를 하는 조은란 씨 


시나리오 작업을 지속하며 언젠가 다시 장편을 연출하겠다는 바람, 그 안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현하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그녀 안에 살아 있다. 

조은란 감독은 “제 삶은 아직 ‘끝과 시작’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중간 지점”이라며 “상상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그날까지 흔들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광양 출신의 조은란 감독 겸 강사는 현재 1인 제작사 ‘영화란’을 운영하며 2014년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영화 강사, 시청자미디어재단/순천시미디어센터/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 강사로 활동하며 영화 문화를 대중 속으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의 이력은 촬영조명스크립터로 △여자, 정혜 (2004) △이대로, 죽을 순 없다(2005)에 참여했고, 기획팀으로는 △고사2 △하이프네이션 △감기에 이름을 올렸다. 제작팀으로는 △우아한 세계(2006) △가면(2007) △순정만화(2008)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2009)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2010) △인류 멸망보고서(2010) △회사원(2012) 등 상업영화 제작의 최전선을 두루 경험했다.

이후 프로듀서로 △셔틀콕(2013) △단편영화 달란트(2022)를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단편영화 끝과 시작(2023)을 직접 연출하며 창작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조은란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단편영화 '끝과 시작'의 포스터

 

수상실적 및 저술 활동으로는 △25회 충무로단편영화제 단편시나리오 ‘제보시후사’ 심사위원특별상 △제11회 고양한백영화제 단편시나리오 ‘목격자’ 장려상 △2018 영진위 한국영화 개봉작 적립식 지원사업선정 장편시나리오 ‘케이스원’ △2020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장편시나리오 ‘혁명, 1919년 3월10일’ 장려상 △2022 영화진흥위원회 상반기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단편부문 1차 선정 ‘끝과 시작’ △2023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독립단편영화제작지원 ‘끝과 시작’ 선정 △2021 ㈜아이톡시 JYJ김재중 다큐영화 <온더로드> 개봉 시 출간용 문고집(일본판) 집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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