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로 벚꽃길을 지나 만나는 산속 마을
봉강면 소재지를 지나 저곡마을 방향으로 차를 몰다 보면, 길 이름부터 특별한 도로 하나가 나온다. 바로 도솔로다. 봄이면 도솔로 양쪽으로 늘어선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터뜨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은 눈처럼 쏟아져 내리고, 차창 밖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그 길에서 만나는 부저농원을 지나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700미터쯤 오르면 해발 400미터 산속에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한 자리에, 꽃과 잔디가 있는 전원주택들이 질서 정연하게 들어선 모습. 이곳이 바로 도솔마을이다.
땅의 혼과 선구자들의 발자취
도솔마을이 신생마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터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의 혼과 땅의 맥을 품고 있었다.
2006년, 50대 후반에 들어선 이평재 씨(78세)는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잡목으로 우거진 산을 사들였다. 숱한 나무를 베어내고 흙을 일구어 농장을 세운 그는 토종다래 품종을 개량해 세계적으로 등록된 ‘리치선셋’이라는 혁신 품종을 만들어 냈다.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지금도 가공공장과 교육장을 운영하며 귀농·귀촌인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 한 분의 원로, 올해 94세인 김수동 어른(94세)은 30여 년 전 홀로 이 산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서 오랜 세월을 살다가 건강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지금도 마루에 앉아 책을 읽으며 맑은 미소를 짓는다. “서울에 있었다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는 그의 얼굴빛은 샘물처럼 투명하다. 그가 지켜온 세월 덕분에 도솔마을은 땅의 기운과 사람의 혼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전원마을의 탄생과 성장
도솔마을의 본격적인 역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코 관련 기업 은퇴자들이 모여 노후의 삶터를 고민하던 끝에, 전원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13년 주택조합이 설립되었고, 2017년부터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9년, 도솔마을은 전원마을로서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마을은 원래 저곡마을에 속해 있었으나 2025년 3월에 독립해 봉강면의 19번째 마을이 됐다. 마을 이름은 뒷산의 이름을 따 ‘도솔’이라 지었다. 불교에서 도솔천은 미륵이 머무는 하늘, 다시 말해 이상향과 같은 세계를 뜻한다. 주민들은 이 이름에 “작은 파라다이스처럼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담았다. 현재 마을에는 26가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는 60여 명. 평균 연령은 63세이지만 아이들이 자라 대학까지 진학하고 있어 ‘젊은 마을’이라 불린다.
다양하게 빛나는 주민들의 삶
도솔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전직 경찰관, 공무원, 기업인, 연구원 등 이력은 제각각 다르지만, 공통된 바람은 하나였다. 바로 청정한 자연 속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
조합장 한웅기 씨는 순천 출신으로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다가 은퇴를 앞두고 도솔마을 조성에 참여했다. 지금은 50평 텃밭을 가꾸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또 다른 주민 우한진 씨는 복분자, 아로니아, 양봉 등을 하며 “돈은 안 돼도 내가 먹을 것을 직접 길러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서로의 삶이 조금씩 다르지만,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며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 뭉쳐 있는 것이 도솔마을의 일상이다.
정을 나누는 공동체
도솔마을의 집들은 모두 마당이 훤히 보이는 구조다. 덕분에 서로의 생활이 자연스레 공유되지만, 그만큼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마을은 ‘나 홀로’가 없는 마을이다. 공동체 합의와 단합이 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전선은 지중화되어 하늘이 시원하게 트이고, 공동 관리 시설과 합리적인 관리비가 주민들의 생활을 지탱한다. 눈이 내리면 이웃들이 모두 삽을 들고나와 진입로를 함께 치운다. 3개월에 한 번씩 마을 청소를 마치면 솥에 닭을 삶아 나눠 먹으며 막걸릿잔을 기울인다. 어느 집에서나 화초를 나누어 심고, 수확한 채소도 나누어 주고받는다. 현대식 전원마을이면서도, 공동체의 정과 풍습은 옛 시골 마을 그대로다.
마을 어귀에는 주민이 기증한 피칸나무가 자라고 있다. 3년 전 심은 어린나무이지만 머지않아 아름드리로 자라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가 될 것이다. 둘레길에는 서어나무가 마을의 품격을 지켜주고 있고, 언젠가 회관이 완공되면 정자나무도 심어 마을의 그늘이자 쉼터로 삼을 계획이다.
문화가 숨 쉬는 전원마을의 꿈
도솔마을에는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다. 바로 황토 맨발 걷기 길이다. 이장은 주민들과 함께 붉은 황토를 퍼 나르며 길을 만들었다. 1.9km 길이의 황톳길에는 수국이 자라고 있고,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다. 아침이면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풍경이 길 위에서 펼쳐진다.
앞으로 주민들은 이 길을 문화의 길로 만들 계획이다. 시화전을 열어 둘레길 곳곳에 시와 그림을 걸고, 마을 전체를 갤러리로 꾸미려 한다. 마을에는 수필가, 아코디언 연주자, 색소폰 연주자, 목공 기술자, 인두화 예술가 등 재능 있는 주민이 많다. 이들의 손길과 끼가 합쳐지면, 도솔마을은 자연 속에서 문화가 꽃피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장의 고민과 포부
이장 임광재 씨(71세)는 늘 이렇게 말한다. “마을살이는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라는 건 서로의 감정을 조율하고 배려하는 과정이죠”
그는 경찰관으로 전국을 돌며 살다가 은퇴 후 다시 광양으로 돌아왔다. 초대 이장으로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일궈왔지만, 때때로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그런데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물질적 발전이 아닙니다.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이지요.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을, 서로 포용하고 함께 성장하는 마을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의 눈빛은 잔잔하면서도 따뜻하다.
걸음이 곧 역사가 되는 마을
도솔마을에는 특별한 유적도, 오래된 문화재도 없다. 그래서 ‘역사가 짧은 마을’이라는 인식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장은 오히려 그것이 도솔마을의 힘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걷는 걸음걸음이 곧 전통이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손길, 길가에 쌓인 눈을 치우는 땀방울, 이웃이 함께 모여 나누는 밥상이 모두 훗날 도솔마을의 역사로 남을 겁니다”
신생마을의 첫 세대라는 자부심은 주민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동시에 더욱 단단히 묶는다. 작고 소소한 일상도 흘려보내지 않고, ‘후손에게 남길 이야기’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도솔마을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생생하고 뜨겁게 쓰이고 있다.
청정, 도솔마을을 상징하는 말
도솔마을을 설명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주민들은 망설임 없이 “청정”이라 말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을 막아주는 마을,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솟는 지하수, 비가 오고 나면 운해가 걸리는 백운산의 풍경. 여름이면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숲속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겨울이면 하얀 눈을 함께 치우며 웃음꽃을 피운다.
이곳은 신생 전원마을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땅의 혼이 깃든 자리,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꿈을 이어가는 터전이다. “도솔마을로 들어오며 품었던 마음, 그 초심으로 화합하며 살자” 이장이 늘 주민들에게 당부하는 말처럼, 도솔마을은 청정한 자연 속에서 오늘도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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