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광양 천년동백축제’가 지난 26일 막을 내렸다. 먼저 광양시민신문 지면을 빌어 광양 동백숲 문화행사 추진위원회에 감사를 전한다.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을 번역해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17년 2월 중순께 자신이 모 풍수학회 회장이라며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한 인터넷 게시물을 접했다. 곧바로 댓글을 남겼다. 

소장하고 계신 분을 알고 있다고. 이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며칠 후인 2월 28일 비로소 만남을 가졌다. 옥룡에서 발견된 것이라 옥룡면사무소에서 만났다. 당시 자리에는 소장자인 서용식 전 의장과  필자와 스님, 스님과 동행한 신도 한 분, 그리고 김경식 옥룡면장 그렇게 5명이 동석했다. 이윽고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이 공개됐다.

당시 서용식 전 의장은 스님에게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이 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냐’고 하면서 ‘한두 페이지만 복사해 주겠으니, 먼저 번역해 오면 그때 봐서 전체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스님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멀리서 오셨기에 오신 걸음에 이를 제공 받기를 원했는데, 여의치가 않자 제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을 복사해 주도록 독려해 주시면, 명당 중의 명당인 ‘묏자리’를 봐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풍수를 선호하지 않아서 말씀만이라도 고맙다는 답례를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광양동백숲문화행사 관계자 지역사랑 결실

필자는 다음에 언젠가는 이를 다룰 때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울러 그간 틈틈이 현직 중국어와 한문학 교수님들에게 내용 중 첫 페이지를 보여주며 자문을 구했다. 당시 대전의 한 중국어과 교수님은 ‘자오묘유와 건곤간손 등 기본적인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풍수 등 여러 방면에 응용할 수 있는 자료’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해 여름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을 번역해 주신 고문헌연구소 김상환 원장께서 전화를 주셨다. ‘옥룡동백문화행사’ 라상채 추진위원장이 이를 번역해 달라는 의뢰가 왔다는 것이다. 뜻밖이었으나 순간, 드디어<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이 비로소 얼굴을 내미는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개인적인 기쁨은 뒤로 하고 번역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로부터 몆 달 후인 지난해 11월 드디어 52페이지에 달하는 번역본과 42쪽의 복사본이 그렇게 공개됐다. 

지난해 11월 번역된 '옥룡자 현묘경'
지난해 11월 번역된 '옥룡자 현묘경'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은

풍수는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부터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우리 선인들은 따스한 햇볕과 맑고 풍부한 물과 공기, 넉넉한 먹거리를 찾아 헤맸던 민족적 지혜의 결실에 다름 아니다. 자연에 거스르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되길 바랐던, 이를 가다듬고 체계화한 전통적 지리관이 풍수다. 만물의 소생이 땅속의 것에 힘입지 않은 것이 없고, 그 까닭에 그 생기(生氣)를 타면 길하고 그렇지 못하면 흉하다는 자연관의 소신이 풍수에 기인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옥룡자(玉龍子)는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도호(道號)다. 통일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선도(仙道)를 공부했던 풍수(風水)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학계의 논쟁은 접어두고라도 지리학회나 풍수학회 도선풍수의 원전은 ‘구천현묘비경(九天玄妙秘經)’으로서 이를 ‘현묘경(玄妙經)’ 또는 ‘도선결(道詵訣)’로 불리는 풍수계의 경전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료다.

이렇듯 현묘경은 도선국사가 입적 후 500년 만에 무학대사가 발견해 필사한 것을 후대에 발견하여 경전으로 여기며, 필독서로서 책으로 출간하거나 강의로 이를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옥룡자현묘경’이라는 제목의 ‘현묘경’은 현재로서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옥룡자 현묘경’이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은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의 필사본이 옥룡에서 소장하고 있었고, 제목만 보더라도 도선이 설파한 것에 다름 아니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공론화 됐으니, 진위 여부와 사료가치가 얼마나 있느냐가 관건으로 이제부터는 검증의 시간이다.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옥룡자 현묘경'
'옥룡자 현묘경'

옥룡자현묘경은 서두에 △자오모유(子午卯酉):동서남북에 있어 해와 달의 밝음에 통하여 용이 움직이는 문로(文路)로서 사문(四門)에 해당되며 △통천지사문(通天之四門):하늘로 통하는 네 개의 문으로 △건곤간손(乾坤艮巽):남동.남서.북서.북동에 군용(群龍)을 거느린 사국(四局)의 우두머리인 ‘사주(四柱)에 해당하고 △입지지사주(立地之四柱):땅에 세워진 네 개의 기둥으로 명당과 가택 등을 선택함에 있어 어떤 곳이 길지인지 등 관련 지침을 안내하고 있다.

이어 △지위천리(只爲天理):단지 천리(天理)는 되지만 △이난위천기지도순(而難爲天機之度巡):천기가 순행하는 법도가 되기 어려우며 △지위지리(只爲地理):단지 지리는 되며 △이난위지세지변환(而難爲地勢之變幻):지(地) 땅의 변환이 되기는 어렵다 △하늘에는 28수가 있다 △어느 때나 변하지 않음이 없다 △땅에는 24록이 있어 어느 곳이나 화하지 않음이 없다. 등등  2500년 전 중국 주나라 때부터 써 온 것으로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궤도와 별자리 위치를 표시한 것 등을 설파하고 있다.

요지는 풍수사상은 땅의 기운(地氣)의 활력에 따라 국가와 민족, 각 개인의 운명에 큰 영향력을 준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또 땅이 단순히 인간의 소유나 이용의 대상이 아닌,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상호 유기적 공간임을 일깨워 주는 데서 시작하는 전통 철학 중의 하나라는 요지다.

아울러 자기가 거주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모든 지리적 요소에 인간적 실존성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도처가 명당임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풍수사상은, 오늘날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혼용·조화시키는 철학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우주적 호흡 또는 정기를 통해 전해오는 침묵의 소리, 인간의 영육은 물론 궁극적으로 운명이라는 괴물까지도 지배하는 우주적 힘을 듣고 느끼게 하는 열쇠 구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명제라는 것을….’

그런 면에서 ‘옥룡자현묘경’의 번역본이 탄생한 것은 진위 여부는 차지하고서라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세상의 변화를 자기만의 암호와 기호로 기록하고 해석하고자 했던 수많은 비결루(秘訣類)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옥룡사지에 날개를 달자

라상채 광양동백숲문화행사추진위원장은 발간사에서 “2021년 ‘동백의 꿈’ 책자 발간에 이어 이번에는 지역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서중 하나인 ‘옥룡자현묘경’을 번역하게 됐다”며 “어느 정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과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다음부터 계속 다룰 것이지만, 옥룡은 우리 지역 문화유산의 보고다. 
풍수지리연구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중앙일보 연재물에서 “도선과 옥룡사지를 ‘웅크린 호랑이’ 도약시키는 명당”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선의 자취를 찾는 것은 우리 지리학의 근원을 찾는 길이다. 백계산 동백나무숲도 결코 우람해 좌중을 짓누르는 나무가 아니다. 세월의 풍상이 덧씌워져 주름이 잡혔으니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기 때문에 산을 잘라내고 우람한 사찰을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리 국토가 호랑이인데 옥룡사지는 호랑이의 엉덩짝 중에서도 똥구멍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현江山猛虎氣像圖)처럼, 웅크리고 있는 곳이 옥룡사지다. 그곳을 침으로 찔러 대륙으로 웅비(雄飛)하라는 위치의 절터”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옥룡사지에 깃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광양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도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거쳐 콘텐츠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명소가 된다.

그렇다. 우리 지역 곳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역사, 문학, 노래, 춤, 음식 모두 지역민의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이야기다. 우리만의 이야깃거리를 찾아 가치 있는 문화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을 기르자. ‘이야기를 다루는 힘’을 키우는 것은 곧 광양의 경쟁력을 쌓는 일이다. 덧붙인다. 지난 20일자 광양시민신문 7면 광양제철고 역사교사를 지낸 이은철 광양지역사연구회 ‘마로희양’ 대표의 ‘시립박물관 건립을 위한 제언’에 동참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다음 호에는 <신재 최산두의 스승 서극수 선생 동백림에 잠들다>편이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