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정비사업 완료…내부 꾸민 후 개방

철거 위기 딛고 문화재가 되기까지 
등록문화재인 옛 진월면사무소가 최근 건물 정비사업을 마쳤다. 1년여 만이다. 

국·도비 등 4억4천만원이 들어간 이번 정비사업은 사진자료 등 고증에 고증을 거쳐 말끔히 정비됐다. 철거 위기를 딛고 등록문화재 739로 지정 된 지 5년만이다. 

그러나 등록문화재가 되기까지의 산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막전 막후를 기록한다.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광양읍사무소 역시 활용방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필자와 광양시는 ‘보존’을 위한 ‘존치’를 주장했고, 일부 주민들은 ‘철거’ 후 ‘주차장’ 조성 등을 통해 공동화된 ‘읍지역 활성화’에 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갈등과 반목으로 치달았다.

 ①정비사업을 마친 옛 진월면사무소
 ①정비사업을 마친 옛 진월면사무소

 

이에 필자는 우리지역과 상황이 비슷한 군산으로 달려갔다. ‘군산근대문화역사관’이 존치를 통해 지금은 관광활성화에 나서고 있는 점을 기사를 통해 부각시켰다. 이에 광양시도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란기(문화유산연대) 대표와 천득염(전남대) 교수, 남호현(순천대) 교수에게 이들 두 곳이 문화재로서 타당한지를 의뢰했다. 

이후 문화재 전문위원들은 그 결과를 발표한다. 12월 3일이다. 함께 진행했던 광양읍사무소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진월면사무소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지붕의 목조트러스 구조가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주출입구 부분을 조형적으로 처리한 독특한 입면 구성을 보이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근현대건축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웬걸 10년 만에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진월면사무소를 철거한다는 것이었다. 요지는 60억원의 예산을 들여 ‘농촌활성화사업’을 추진 중인데, 옛 진월면사무소를 철거하고 그곳에 주민들의 복지시설을 짓겠다는 것이다. 설마 했다. 부랴부랴 광양시에 타진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동안 광양시가 문화재로서 타당하다는 조사 결과를 방치하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일부 위원들을 만나 이를 설득하고 또한 선소주민으로서 회의에 참석해 옛 진월면사무소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임을 입증하는 서류와 사진 등을 통해 의견을 피력하려 했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이미 철거 후 신축하는 것으로 기정사실화 돼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 기자들을 설득했다. 지난 2008년 조사 때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니 ‘존치’에 무게를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는 양측 주장이 담겼지만, 그 또한 여론을 환기 시킬 수 있으니 고마웠다, 하지만 철거는 재론의 여지가 없이 요지부동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인맥을 총동원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에 진정을 했다. 진정서에는 ‘농촌활성화사업을 하면서 문화재 가치가 있는 옛 진월면사무소를 철거할 예정이니 이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김란기 문화재전문위원은 전화를 걸어 ‘진정서를 봤다. 내일 문화재전문위원들의 회의가 있으니 반드시 보존해 등록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쓰자’고 격려했다. 이윽고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문화재청은 옛 진월면사무소가 농촌활성화사업으로 인해 철거되는 일이 없도록 농식품부 해당 부서에 철거보류 지시를 내렸다’는 낭보였다. 옛 진월면사무소는 그렇게 문화재가 된 것이다.

②일제강점기 진월면사무소 내부도면. 사무실은 디귿자 형태로서 사진과 동일하다.
②일제강점기 진월면사무소 내부도면. 사무실은 디귿자 형태로서 사진과 동일하다.

 

보존·계승·발전은 우리의 몫
혹자는 그랬다. ‘1950년대에 건축됐고 볼품없는 그것도 다 쓰러져 가는 옛날 면사무소가 무슨 문화재가 되느냐’ 고.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무수히 잃었다. 세계 유일했던 망덕리 외망마을의 ‘해태조합’과 ‘해태조합관사’도 잃었다.

일제강점기 야마모토 산본이 운영하던 망덕의 ‘자라양식장’과 선소의 ‘광양경찰서 진월주재소’ 망덕과 선소의 적산가옥도 잃었다. 그곳은 횟집이 들어섰거나 또는 개인 사유지나 도로, 공원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근대문화유산인데도 문화재 등록을 하지 못한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됐다.

근대건축유산이라는 건축사적 가치와 함께 중요한 비지정 문화유산이었지만 개인소유라는 점, 공시지가 이상은 엄두도 못내 매입을 미루는 그 사이, 결국은 건축주에 의해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수도 없이 목도했다.

교훈은 가까운 데 있다. ‘윤동주유고정병욱가옥’을 보라. 그리고 호남정맥의 시발점 ‘망덕산’은 빠른 속도로 핫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지역에 문화재 등 명소가 많으면 지역은 변한다. 방문객 숫자뿐 아니라 생산 유발 효과, 부가가치 유발 효과, 취업 유발 효과, 지역경제 효과 등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치다.

③소화 6~9년 진월면 재산관계서류로 1926년~1928년 당시 면소유 재산을 광양군에 보고한 서류이다. 
③소화 6~9년 진월면 재산관계서류로 1926년~1928년 당시 면소유 재산을 광양군에 보고한 서류이다. 

 

진월면사무소는 우리의 보석
옛 진월면사무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미닫이 형식의 기다란 창문과 나무로 된 직사각형 출입문. 건물 현관 윗 부문에 새겨진 올림픽 오륜기를 연상케 하는 둥근 무늬는 거푸집을 이용하지 않은 오직 장인의 손으로 빚은 것이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유발한다, 당시 진월면사무소는 내부 도면이 말해주듯 근처에는 여관과 음식점들이 즐비한 광양의 먹거리 1번지였다. 면사무소 옆 ‘광양여관’이 그 대표적인 예로서 쥔장이 광양이다 보니 그 가솔들은 대부분 광양읍이나 옥룡으로 지금도 마을에 여럿 살고 있다. 이주 2세대인 셈이다.

시대적인 아픔도 겪었다. 당시 면서기, 지서 주임 등은 여전히 동네에서 나름의 힘을 누렸다. 망덕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인들을 사살하고 무기도 포획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했지만, 선소의 광양경찰서 진월주재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후 포스코 제2제철소가 광양에 들어설 당시인 1981년에는 포스코 임시 사무소로 쓰이기도 했다. 

 ④1961년 진월면사무소 모습 사진은 주봉래 군수와 최정호(오른쪽)면장

 

문화재는 소중한 우리의 자산
문화재는 우리 광양인의 역사·전통·문화 등의 이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전어잡이 출항 때 용왕제가 행해졌던 선소마을 무적섬의 ‘개바구’와 가장터 ‘돌팍거리’ 동정아래 바위에 새겨졌던 음각 등은 도로 확장으로 인해 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유산은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유출되고 개발의 미명 아래 무차별적인 파괴와 훼손을 당했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지금도 그 가치를 충분히 조명받지도 못한 채, 대부분 멸실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들을 찾아내 계승발전 시키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 다음호에는 ‘사진으로 보는 우리지역 역사’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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