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서유검 기적비앞서 망덕산 천자봉조혈(天子奉朝穴)의 대구서씨 효자 범명당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곳에 광양현 고을 수령이 직접 확인하시고 서유검의 효행을 칭송했다는 일화를 덧붙인다.서유검(徐有儉)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로써 어머니의 목숨 연명을 위해 마지막 효도를 한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다시 시묘를 시작하니 부친 묘소에 대한 시묘살이의 효행도 더불어 알려지게 되었다. 더욱이 부친 묘소를 호랑이와 같이 지켰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급기야 광양 현감까지 이 소문이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현감은 서유검의
지난 10일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에 광양동학의 성지인 하조마을에 유하덕공과 조두환공의 넋이 쉬는 묘에 성묘를 다녀왔다.지난해 순천영회도회소 제1회 학술대회 시(2023.10.23.) 청주대학교 김양식 교수가 “유하덕공의 출신지가 순천이다”라는 강의에 수강자인 필자가 거수로 “유하덕공의 출신지는 광양 봉강 하조이며 마을에 가면 묘도 있다”고 말했다. 추측하건데 강의 후, 유하덕공의 출신지가 학계에 새롭게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김명재 순천영호도회소 국장은 유하덕공의 묘지가 봉강에 있단
호랑이가 잡아준 묫자리앞서 망덕산은 부마(駙馬)와 옥비(玉妃)가 나는 천자봉조혈(天子奉朝穴)로 호랑이가 잡아준 범명당이 있음을 밝혔다. 대구서씨 전첨공파 광양문중은 범명당의 음덕으로 광양의 망족(望族, 명망 있는 집안)이 됐다. 대구서씨 광양 입향조는 신임사화의 난을 피해 구명도생(苟命徒生)한 서종달(徐宗達)이다. 『대구서씨(大丘徐氏) 전첨공파(典籤公派) 휘종달가승(諱宗達家乘)』을 보자.서종달은 대구서씨 전첨공파 18세로 광양 입향조(入鄕祖)이다. 원래 고향은 대대로 살던 경기도 포천이었다. 서종달은 1680년(숙종 6) 10월 초
김개남 장군에 대한임병찬의 밀고·이도재의 즉결처분임병찬의 밀고를 보면 국권회복을 위해 면암 최익현과 항일의병을 일으켜 싸운 것에 대하여는 분명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1894년 12월 같은 고을의 친구 김개남 장군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동학농민혁명 활동 중 청주병영공격의 패배로 고향 인근 매제집에 숨어있는 그를 더 안전한 곳이다며 유인하여, 전라관찰사 이도재에게 밀고함으로써 임실현감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이도재가 보낸 쌀 20석을 받지 않았다는 깨끗한 점도 있다고는 하나 한편으로는 조선 오백년의 이념
광양의 효자와 호랑이광양의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은 물가나 해안가에는 적고, 광양읍과 백운산 인접 지역에 많다. 호랑이 형상의 산은 범산 또는 호랑이 산으로 부르고, 바위가 범과 같은 모습으로 생기면 호랭이바구, 범바구, 범바위 등으로 불린다. 범꼬리 형국이라 해서 범뎅이, 범처럼 생긴 산등성이는 범딩이, 범을 닮은 골짜기는 범골이라 한다. 광양읍 죽림리 호암마을의 정자나무 앞에 호랑이 형상을 한 큰 바위가 있다. 이를 범바구라 부르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호암(虎巖)이다. 마을의 이름도 이 바위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읍성
호랑이와 우리 민족천상계에 북극성이라는 중심별이 있고,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은 그들의 우두머리인 인군(人君)대왕이 있다. 같은 원리로 산속에는 산의 황제인 호랑이가 있어 산중을 지배한다.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를 산군(山君) 대왕이라 칭한다. 호랑이가 백수(百獸)의 왕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잘 먹지 않는다. 또 호랑이는 주로 멧돼지·노루·산양·곰·사슴들을 사냥해 먹기 때문에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를 차지한다. 『주역(周易)』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할 때 인방(寅方)이라고 하는데,
김인배공의 사수(師授) 김개남(1853.9.15.-1894.12.3.)장군도 살펴보자.새 세상 만들겠다고 이름까지 바꾼 사람 동학농민혁명 김개남 장군, 그는 전북 정읍시 산외면 정량리(988-1번지)원정마을에서 중농으로 아버지 金大欽과 어머니 익산이씨 사이에서 자는 기선(箕先) 보명은 영수(永疇)로 도강김(道康金)씨 28세로 조선말기 1853년 9월 15일 태어나 동학농민 선언의 지도자이자 혁명가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그는 19세에 연안이씨와 결혼했으나 1년만에 상처한 후 임실거주 전주이씨와 재혼해 지금실(정읍시 산외면
포스코그룹의 장인화 신임 회장의 취임을 광양시민 그리고 기업인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포스코그룹의 미래를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철강분야 최고의 전문가로서 존경받으며, 이차전지 소재 및 수소산업 등 신산업 육성에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시는 장인화 회장의 취임은 대내외적으로 포스코그룹이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강한 신뢰와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광양시는 포스코와 상생의 공동운명체로서 기쁨과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동안 시민 모두가 상생과 소통의 마음으로 기업을 응원하며 기업하기 좋은
진상면 섬거(蟾居)마을 동제(洞祭)전국에 장승제를 지내는 곳은 많다. 예전에는 진상면 섬거(蟾居)마을 동제(洞祭) 때 장승제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광양군지(1983년)』, 『마을유래지(1988년)』에는 섬거마을 당산제로 기록되어 있으나 마을에서는 당산제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섬거 동제’라 부르고 있다. 동제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마을의 유래가 500여년을 넘었고 지신(地神)을 모시는 신체(身體)의 귀목나무(느티나무) 수령이 400년을 넘었다고 전하니 마을의 역사와 거의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마을 김태호(金泰鎬)
영하의 날씨에 산에서 내려와 마을 회관에서 거실 옆에 자그마한 방에서 따뜻한 차(茶)를 나누며 그는 어렸을 적 어른들한테서 들었다면서 하는 말씀이 “조두환 공이 민보군에 쫓길 때 그날 새벽에 눈이 내렸는데 본 마을 출신으로 지역 지형을 잘 아는 편이라 민보군에 쫓기다보니 엉겁결에 신은 짚신을 거꾸로 신고 바로 보이는 도랑(또랑)쪽으로 들면서 바위밑 굴속으로 숨어 들어가 있는데 불과 몇 분후 굴바로 앞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서서 조두환 공을 쫓던 민보군이하는 얘기가 ‘야, 이사람이 금방 빠져나가 부렀네’라고 하는 소리를 굴안에서 듣고
성현(聖顯)을 보이는 돌과 나무서낭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을 말하는데,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종교였던 서낭당이 세계종교에 밀려 퇴색되어 버렸고, 마을 신앙마저 사라지고 있다. 서낭당을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하는데, 성황당(城隍堂)과 서낭당(西娘堂)으로 표기를 달리 해야 하고, 둘을 구분하여 어원을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몽고는 드넓은 초원에 오래된 유목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산이나 언덕에 우리의 서낭당과 같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를 오보(oboo)라 한다
광양의 우주수(宇宙樹)읍치(邑治)란 고을 수령이 일을 보던 관아(官衙)가 있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그 고을의 행정 중심지였다. 일반적으로 읍치는 여러 가지 환란(患亂)에 대비하기 위해 길지(吉地)를 택해 성(城)을 쌓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 읍치(邑治)에서는 1묘(廟)3단(壇)이 기본적으로 운영됐다. 다시 말해 각 고을의 문묘, 사직단, 성황단, 여제단 네 곳을 나라가 관리했다는 것이다. 문묘는 대성전을 정전(正殿)으로 하여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五聖)이라 불리는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자(子思子)·맹자
지난해 순천에서는 순천영호도회소 기념사업회를 창설해 동학농민혁명 129주년을 맞아 제1회 순천영호도회소 학술대회를 순천대학교 70주년 기념관에서 10월 26일에 개최한 바 있다. 이날 학술대회는 김평부 동학북소리 공연 후, 주영채(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이 좌장으로 한양대학교 윤석산 교수, 대구대학교 김용휘 교수. 청주대학교 김양식 교수와 토론으로 한국창의예술고 명혜정, 우석대학교 문동규, 순천대학교 최현주 선생이 참여했다.학술대회에서 필자는 김양식 교수에게 “영호도회소 수접주로 활동한 유수덕은 순천사람이 아니고 광양사람이며 광양
역설(逆說)중세의 신 중심의 시대가 가고, 오늘날 과학 지상주의 시대가 되었다. 과학이란 것은 모두 좋은 것,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과학은 관찰이라는 수단과 그것에 기초한 추론을 통해 먼저 대상과 세계에 대한 개별적 사실들을 발견하고, 다음으로는 그 사실들을 상호 연결해 주며, 미래에 발생할 것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 주는 법칙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제 과학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되고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인간이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한다고 해서 지구의 모순과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
간밤에 비가 내린 탓이었을까? 방금 세수를 끝낸 듯한 나무들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모처럼 맑은 풍경을 대하니 흐려있던 내 눈도 마음도 한층 밝아진 느낌이다. 겨울이면 항상 주위를 맴도는 바람과 추위에 익숙한 산속 생활이지만 가끔은 수고했다며 슬쩍 건네주는 선물은 그동안의 힘겨웠던 시간들을 모두 잊게 해 준다. 겨울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따뜻한 햇살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인다.다가오는 햇살의 유혹에 이끌린 나머지 뒷산에 가려다 말고 처마 밑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정수리 부근이 따뜻해지면서 온몸으로
세계종교와 원시종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종교(宗敎)는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현상이다”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초월적·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험과 신앙에 기반을 둔 교의·의례·시설·조직을 갖춘 사회 집단이 형성되는 문화현상을 다룬다. 종교는 신을 연구해 그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는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종교를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나눈다. 보통 ‘고’의 반대개념은 ‘저’이고, ‘상’의 반대개념은 ‘하’로 쓴다. 물론 ‘고하(高下)’라는 말을 사용
앞서 유수덕, 유화덕, 조두환 세 분을 언급했는데 그들은 우리광양 뿐만아니라 전남동부권에서 당시 지체있는 분들이라 동학혁명활동 이외 집안 내력과 일반활동 사항을 잠깐 소개를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유수덕 공의 집안 후손들의 얘기로 광양군 봉강면 강변촌에서 발생한 이학조 치사사건 보고서(1897.8)등의 기록을 찾아보면.유수덕 공의 가까운 집안 후손(유상열 1941년생)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수덕 선조는 조령마을 출신으로 증조조와 유하덕 선조와 친형제 지간이나 사촌 형제로 알고 있는데 선조가 동학에 큰 인물로 활동을 하다가 희생을
동학의 시발 19세기 중반기를 넘어 농민항쟁이 계속됨에도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반영되지 않고 더욱 악화일로에 있을 때 안으로는 외척세력의 발호와 폐단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밖으로는 서양과 일본세력의 침략이 노골화 함으로서 국민들의 위기의식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더욱이 삼정의 문란에 따른 중앙정부위 통제력이 이완되면서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증가하는 추세로 조선정부는 산적한 모순을 해결할 능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다. 이 무렵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도된 東學이념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이론을 제시해 세
천마시풍형(天馬嘶風形)의 늑포(勒浦)「기밀록(機密錄)」의 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東五十里勒浦 天馬嘶風形 龍遠虎近 左有卓旗 右有大江 小溪合流 三陽多峰 世世登榮(9면) (현의) 동쪽 50리 늑포에 천마가 바람을 가르며 울부짖는 형국이 있다. 용은 멀고 범은 가깝다. 왼쪽에 탁자의 깃발이 있고, 오른쪽에 큰 강이 있다. 적은 냇물이 합류하고 삼양에 봉우리가 많으니 대대로 영화에 오른다. 늑포(勒浦)가 어디일까?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주위의 사람들과 연로하신 분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분이 없다. 진월면 구동마을에서 재를 넘으면 금동마을이다
삼명육통(三明六通)과 삼통(三通)과연 인간은 차원이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영적인 축(軸)을 가진 사람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들은 공부를 하든, 명상을 하든,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되든, 모두 신안(神眼)을 갖게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색(色)과 공(空)의 세계를 넘나들 수 없지만, 이들은 색(色)과 공(空)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능력을 불가에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이라 한다. 석가와 아라한(阿羅漢)이 최초의 깨달음에 도달할 때 얻었다는 3가지 초인적 지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