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천석꾼들천 섬을 거두려면 500마지기, 즉 십만 평의 땅이 있어야 한다. 광양은 거대한 백운산이 있어 들판이 적다. 뿐만 아니라 섬진강 하구에 위치해 넓은 농토를 보유하지 못했다. 섬진강 유역은 다우(多雨)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하상계수가 제일 크다. 홍수가 빈번했기 때문에 빈촌(貧村)으로 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농사지을 땅이 적고 바위와 산이 많은 곳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곳은 살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성격이 강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다. 악착스럽고 근면해야 한다. 이를 반영해 ‘고춧가루 서 말을 먹고 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농업국가오늘날 유교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반상(班常)이 구별된 농경 수도작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농경사회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거 산업화ㆍ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200, 300년에 이룬 성장을 우리나라는 불과 50, 60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은 붕괴하였고, 서구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만연(蔓延)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시대에 되살려내어야 할 충ㆍ효ㆍ예의 유교적인 가치
지난 토요일인 11월 11일 서울에서는 ‘퇴진 광장을 열자’는 주제로 민중총궐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매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을 전후로 열리는 노동자대회도, 농민기본법 쟁취를 위한 농민대회도 함께 진행되었죠. 민중의 삶이 얼마나 어려워졌으면 집권 1년도 안된 지난 6월, ‘윤석열 퇴진운동본부’가 결성되었을까요.‘민중총궐기, 11월 11일 서울로 갑시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문의 전화가 많이 왔습니다. ‘부아가 나서 가만히 못 있겠다, 같이 갈 수 있는가’는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몇 분의 시민들이 상경 투쟁에 함께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 불을 피워 밤에는 봉(烽:햇불)과 낮에는 수(燧:연기)로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가 막을 내린 것은 1884년 개화 중심에 있었던 홍영식 선생의 신관제에 의한 우정국 창설로 폐지됐으나 같은 해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정국이 다시 폐지됐다가 시대조류에 따라 1895년에 우정국의 부활로 봉수대의 기능이 사라졌다. 이 봉수대가 우리 광양에서는 구봉산에 있다가 봉화(건대)산으로 이설했다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이 있다 이 구봉산은 광양만의 홍선출해(큰배가 들고 남-하포 앞바다)로 우리나라에
진목마을과 안창범이 마을은 약 370년 전 밀양박씨(密陽朴氏, 노정공 박봉우)가 처음 입촌해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하는데 옛날 이 부근 마을에서 임진왜란의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 시기보다 앞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순흥안씨(順興安氏)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광양시지, 제4권, 797~800쪽)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뒷산이 새우등[징게미]처럼 굽어 있는 형국이다. 마을에 청룡(왼쪽)으로 청룡등을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의 도로가 청룡등 밑으로 나 있는데 옛날에는 청룡등 밑에 청룡이라는 마을이 있었
양택으로 유명한 차동마을광양시 진월면 차동마을은 풍수가들에게 많이 꽤 유명한 마을이다. 이곳이 우리나라의 양택으로 매우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차동마을 연원은 고려시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에는 1760년(영조 35)에 펴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진월면(津月面)의 옛 지명인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月浦面)이 처음으로 나온다. 진월면은 진하면과 월포면의 첫 글자만 따서 합쳐진 지명이다. 마을 뒤 서북쪽으로 넘어가면 진상면 목과, 죽양, 입암마을이 나오는데 그 고개를 상재라 했고, 고개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
존경하는 광양시민 그리고 기업인 여러분!다가오는 11월 4일은 우리 광양시와 시민들에게 매우 특별한 날입니다. 42년 전인 1981년, 대한민국 제2제철소 부지로 광양만이 확정 발표된 날이며, 한적한 농어촌 광양이 제철과 항만도시로 상전벽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광양상공회의소는 이날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광양시와 여수광양항만공사 그리고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과 함께 지난해 ‘제1회 광양시 기업인의 날’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광양의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해주신 기업인들과 선배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를 주제로 행사 의
백운산이 간직한 세 가지 신령한 기운지난 호에서 인용한 『광양시지』의 기록처럼 흔히 풍수가들은 백운산이 봉황, 여우, 돼지의 세 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각각 인물, 지혜, 부(富)라는 세 가지 정기로 해석하고 있다.필자는 백운산의 영험한 기운 덕분으로 세 가지의 정기에 해당 인물들이 이미 정기를 받았거나, 지금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봉황의 기운을 받은 높은 벼슬의 인물이 나타나거나, 여우의 기운을 받은 지혜로운 인물이 탄생하고, 돼지같이 다산의 기운을 받은 여럿의 출중한
아직도 한참 젊은 거 같은데 주변에 어린 동생들이 늘어나고 03년 대학 새내기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단 걸 셈하고 보니 나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라는 걸 실감하곤 한다.창문을 열어 선선한 가을 공기를 삼키며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래를 흥얼댄다.“젊은 날의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리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바쁘고 치열하게 열심히 산거 같은데 이뤄 놓은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현실 속에서도 보석 같은 아이들 내 곁에 있어서 그 아이들 덕분에 그래도 내 삶이 풍요로울 수 있는
공(公)은 원주이씨 시조공 신우(申佑)의 19세손으로, 부는 연복(延福), 모는 인천채씨 사이에서 1579년에 강진군 성전면 금당리에서 태어났다. 휘는 준(浚), 자는 형지(泂之), 호는 귀래정(歸來亭)이다. 조부 이남(李楠)은 조선 중기 광양현감(『광양군지(1983)』에 역대 현감 11번째로 기재됨)을 지냈다. 이후 무장현감을 끝으로 퇴임하고 금당리에서 노후를 보낸다. 이남의 셋째 아들은 이억복(李億福)으로, 역시 조선 선조 때 광양현감(1583-1584)을 지냈는데, 그가 이준의 백부이다. 이억복은 여진족의 난리를 다스릴 때 남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돌 우를 지나 어루만지듯, 쓰다듬듯 파도가 친다.그 우에 배경처럼 여성들의 잔잔한 회고가 얹어진다.영화는 이렇게 시작됐다.10·19 여순항쟁 75주기를 즈음해 뜻있는 분들과 단체의 노력으로 영화 상영, 강연, 문화제 등이 이어졌다. 광양시 ‘10·19 여순사건’ 희생자 추모 조형물도 제막식을 갖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제주 4·3항쟁을 다룬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 영화 상영이 있었다. 제주 4·3항쟁 중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 군사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한 다섯 여성의 기억을 담은
광양제철소 협력사협회는 제철산업의 동반자로서 안정된 일자리 유지와 제철산업 상생 발전을 위해 포스코노동조합의 단체행동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포스코의 단체행동은 공감을 얻기가 어렵습니다.포스코노동조합은 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한 이후 쟁의대책위원회 출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신청 등 파업으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는 선망받는 회사의, 선망받는 직원들의 단체행동으로, 가진 자들의 무리한 요구로 폄하될 수도 있음을 과거 타 대기업들의 노사이슈 시 국민의 여론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
광양을 본향으로 삼은 성씨살기 좋은 곳에는 그 지역의 토착 세력이 관향(貫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섬을 본향으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선시대의 섬은 거의 유배지였다. 아마도 제주도는 고(高), 부(夫), 양(梁)씨들이 본향으로 삼은 곳인데 너무 커서 섬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제주도의 북쪽에는 탐라국의 시조들을 제사 지내는 삼성혈이 있고, 그곳과 관련된 탐라국 건국 신화가 있다. 옛날 사대부들은 농사짓기가 척박한 바닷가나 천재지변으로 길이 막히는 곳인 섬을 선호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는 사대부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사회적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환경 파괴와 불평등,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였으며, 경쟁과 효율을 기반한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협동과 연대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활동을 말한다. 사회적경제기업은 지역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경제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기업으로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및 사회서비스 제공과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등 사회적 목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역대급 긴축재정 기조가 사회적경제에도 영향이 미쳤다. 지
오는 10월 11일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일이다. 전국에서 단 한 곳에서 치러지기에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 선거였지만, 내년 총선의 전초전이라는 판단 때문인지 관심도 선거전도 뜨거운 편이다. 지난 9월 28일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내년 총선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 61.7%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답했다.(매우 영향 21.1%, 어느 정도 영향 40.6%) 내년 총선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도 야당에 힘 실어주는 선거라는 응답이 48.0%로 여당에 힘 실어주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남쪽으로 나 있는 거실 창문을 연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작은 뜰의 초록 물결에 나를 맡기고 한동안 멍하니 명상에 잠긴다. 일명 나의 행복한 뜰멍 시간이다. 꿀 같은 시간이다. 작은 뜰이지만 내겐 아주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 집 뜰에는 남천, 영산홍, 제피나무, 호랑가시나무, 사과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의 멋스러움을 자랑하며 크고 있다. 그중 나의 눈길이 가장 많이 가는 나무는 뜰 한 가운데에서 해마다 7월부터 10월까지 백일동안이나 꽃을 피워 뜰과
강진군 성전면 월남마을 월출산(月出山)은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 경계에 있는 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진 월출산으로 볼 것인지, 영암 월출산으로 볼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광주 무등산에서 동쪽으로 전진하여 해발 810.7m이다.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예부터 사람들은 기암괴석과 절벽, 폭포가 많은 산을 영산(靈山)으로 인식한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고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옛날부터 ‘호남 3대 명촌’ 중의 하나가
정인화 시장이 이순신 랜드마크에 대해 초지일관하는 모습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19일 광양 관광활성화 포럼의 인사말에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유추할 수 있다.이날 정인화 시장은 “그동안 여수, 순천처럼 관광객이 찾아오는 광양시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일종의 의무감과 자신감, 그런 것들이 계속 제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정 시장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초지일관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광양시 랜드마크가 이순신으로 가이드가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마을삼계면은 현재 전국의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는 최고로 많은 약 200여 명의 박사를 배출해, 2005년부터 이곳을 박사골마을로 바꿔 부른다. 또, 임실군은 세심리에 박사마을의 이야기와 문화를 담은 박사골체험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博士(박사)의 고장 三溪面(삼계면)’ 비문에 “산자수명한 우리 고장 인심 좋고 성실한 조상들의 덕망을 이어받아 명석한 두뇌를 갈고닦아 국가의 동량이 된 박사촌을 이루었으니 그 높은 뜻을 기리고 후대에 전수코자….”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2017년 삼계면 행정구역은 후천리에 후
최근 밀폐된 공간에 화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인명피해를 동반했음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한다. 지난 22일 새벽 1시 40분쯤 필자가 사는 공동주택 지하 2층 주차장 소형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주민의 화재 신고로 광양소방서 현장 출동 후 지하주차장 접근을 시도했으나 시커먼 연기가 앞을 가려 시야 확보의 어려움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양경찰서 직원들이 관리사무소 CCTV 확보해 발화지점을 지하 2층 주차장(C-21)에 주차된 차량이다는 무전을 송신하여 소방관들이 발 빠르게 어둠을 뚫고 진입했다.필자는 소방관에게 지하